제1회 올림픽이 아테네에서 개최되다
1870년 윌리엄 페니 브룩스 박사는 전 세계의 국가가 여러 스포츠 경기를 하는 무엇인가를 만들자고 누군가에게 제안을 했고, 그 제안을 받아들인 인물이 바로 쿠베르탱이다.
쿠베르탱은 1890년에 잉글랜드 슈롭셔주에 있는 웬록에서 올림픽을 개최하자고 했는데, 이는 전 세계 국가 올림픽을 개최하자고 제안한 윌림엄 페니 브룩스가 웬록 올림픽을 개최한 마을이었던 것. 웬록 올림픽이라고 해봤자 축구, 크리켓, 고리 던지기 같은 오락 축제를 벌인 마을 잔치였다. 이처럼 올림픽이라는 말은 그냥 동네마을 동네 운동회에 불과했다.
쿠베르탱은 올림픽 자금을 애버로프로부터 지원받게 된다. 그리고, 첫 올림픽 개최지로 그리스를 선정하게 되고, 그리스 황태자 콘스탄티노스 또한 지원을 아끼지 않았는데, 이는 올림픽조직위원회 회장을 염두에 둔 지원이었다.
그런데 그리스는 당시, 재정적, 정치적 불안정 때문에 올림픽 개최가 불가능할 것이라는 의견이 다수였고, 조직위는 개최비용이 원래 쿠베르탱이 예상한 것보다 3배나 높아질 것이라고 예상하며, 이 돈을 마련하지 못하면 사임하겠다고 으름장까지 놓았다. 조직위가 예상한 개최비용은 3,740,000 드라크마 금화였다.
그럼에도불구하고 쿠베르탱은 1895년 1월 7일에 콘스탄티노스 황태자가 조직위원회 위원장을 맡게 되었다는 발표를 하며 올림픽 개최붐이 그야말로 절정에 다다르게 된다. 위원장이 된 콘스탄티노스 황태자는 그리스인들에게 애국심을 내세우며 낼 수 있는만큼의 돈을 기부해달라며 호소했다. 그 결과, 330,000 드라크마나 되는 자금을 확보했다. 유표를 발행하여 40만, 티켓 판매로 20만, 에버로프가 추가로 92만 드라마크를 기부하기까지 하였다. 콘스탄티노스 황태자는 이에 대한 고마움으로 에버로프의 동상을 세워주기까지 하였다.
1894년에 IOC에서 새로 만든 첫 규정은 올림픽에는 오직 아마추어 선수만이 참가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펜싱 경기를 제외하고는 아마추어 규정에 입각해서 진행되었다. 경기 규정과 같은 것들은 체계화 되지 않았기 때문에 IOC는 각 국의 제각기 다른 규정들 속에서 새로운 규정을 정하느라 정신이 없을 지경이었다.
드디어, 1896년 4월 6일 첫 근대 올림픽이 개막되었다. 이 날은 서방 교회와 동방 정교회 모두에게 부활절 다음 월요일이었으며 그리스 독립 전쟁의 기념일이기도 하였다. 파나티네코 경기장에는 요르요스 1세와 그의 가족들을 포함한 약 80,000명의 관객이 와 있었으며 대부분의 선수들은 경기장 내에 나라별로 서있었다. IOC위원장인 콘스탄티노스 황태자의 연설이 끝난 후에 그의 아버지인 요르요스 1세가 개최를 선언하면서, 근대 올림픽이 시작이 되었다.
다만, 올림픽 선수촌은 없어서 숙박은 선수들이 알아서 구해야 했는데, 1924년 파리 올림픽 때 오두막집을 지어서 선수들에게 제공한 것이 최초의 선수촌이다. 하지만, 전 선수단의 10% 밖에 수용을 하지 못했고, 1932년 올림픽이 진행되는 도중에 완공이 되는 우여곡절이 있었다.
심지어, 1948년 올림픽 당시에는 군 부대 막사를 선수촌으로 활용하는 슬픈 역사도 있었다.
개막전에 제대로 된 선수촌을 지어 숙박을 해결한 것은 1952년 헬싱키 올림픽에서였고
이때 선수촌을 공산주의와 비공산주의로 나누어 분리시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