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현실주의 작가 프리다 칼로, 세상을 등지다
프리다 칼로 드 리베라(스페인어: Frida Kahlo de Rivera, 1907년 7월 6일 ~ 1954년 7월 13일)는 멕시코의 초현실주의 화가이자 공산주의자이다.
멕시코의 코요아칸에서 태어났고, 그녀의 아버지인 기예르모 칼로는 독일계였다. 독일인 아버지가 '프리다'라는 이름을 붙여주었는데 이는 독일어로 평화를 뜻한다. 스탈린주의자인 아버지와 평화주의자인 어머니 밑에서 성장했다.
현실주의, 초현실주의, 상징주의와 멕시코의 전통 문화를 결합한 원시적이고 화려한 화풍으로 알려져있다. 6살에 소아마비, 16살에 교통사고, 30여 차례의 수술, 죽음까지 이른 병마, 남편의 끝없는 여성편력, 세 차례의 유산, 불임 등 그녀의 삶에 반복된 고통과 절망은 수많은 작품의 오브제가 되었다. 거울 속의 자신을 관찰하며 고통을 이겨냈고, 자신과 관련된 소재들을 즐겨 그렸기 때문에 그림 중 자화상이 많다. 143점의 회화 작품 중 1/3 가량인 55점이 자화상이다.
칼로는 과격한 스탈린주의자였으며, 디에고를 비롯한 공산주의자 주역들과 함께 멕시코의 정신을 일으켜 과거 식민지의 잔재를 극복하려 하는 등의 정치적 활동과 문화적 계몽 등 여러 방면으로 애를 썼다. 멕시코 민중의 토속 예술을 되살리려 노력하기도 했다.
생전에는 디에고 리베라의 아내 정도로 여겨졌으며 유럽에서는 리베라보다 인지도가 더 있는 정도였다. 그러나, 70년대에 페미니즘이 부상하며 재조명되었고 현대에 와서는 영화, 노래 등 다양한 매체에서 회자되며 기구한 생애, 독특한 캐릭터와 작품들이 대중에게 많이 알려져 있다. 오늘날 프리다 칼로는 20세기 멕시코 예술과 페미니즘의 아이콘이 되었다.
여성을 억압하는 전통과 관습을 극구 거부했다. 자신의 지성과 매력을 십분 활용하여 러시아 혁명가 레온 트로츠키와도 연애를 했다는 설이 있는데, 연애가 아니라 친구나 사제 관계였다는 말도 있다. 이외에 조각가 노구치, 사진작가 니콜라스 머레이 등 나이와 성별에 구분없이 자유롭게 연애했다.
결혼 후 프리다는 디에고와 여러 작품활동을 했지만 디에고의 여성 편력으로 2차례의 이혼과 재결합을 했다. 과거에 겪었던 사고의 후유증은 매우 심각해서 그녀는 평생 아이를 원했지만 모두 유산했다.
이혼 후에도 여러 작품을 그리면서 활동을 열심히 했으며 재혼 후 여러 작품을 남기고 공산주의 활동에 나서다 폐렴의 재발로 인한 폐경색으로 1954년 7월 13일, 세상을 떠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