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통일을 이룬 문무왕, 동해의 용왕이 되다
김유신 위인전을 보면 유명한 이야기가 있다. 누이 보희가 경주 서형산에 정상에서 오줌을 누자 온 나라가 오줌에 젖었고 이 이야기를 동생 문희에게 이야기를 하자 동생이 이를 비단 주머니를 주고 꿈을 산다. 그리고, 어느날 김유신과 김춘추가 축국을 하고 놀다가 김춘추의 옷고름을 밟아 떨어뜨리자 집으로 불러 문희로 하여금 김춘추 옷 고름을 달아주게 했는데 이날 둘은 첫날밤을 치룬다. 그리고나서 문희의 배가 불러오자 김유신은 문희를 마당에서 화형을 시키려 불을 지르고 이를 알게된 선덕여왕이 아이 아빠가 누구냐 묻고 김춘추라고 하니 어서 그녀를 구하라 하여 이렇게 하여 둘이 결혼을 하였고, 당시 문희가 임신한 아이가 바로 훗날 문무왕이 되는 김법민이었다.
진덕여왕 4년, 법민은 당에 사신으로 파견돼 고종에게 〈치당태평송〉(致唐太平頌)을 바쳤다. 고종은 이를 가상히 여겨 법민에게 태부경(太府卿)이라는 벼슬을 내렸다. 654년 아버지 김춘추가 진덕여왕 뒤를 이어 왕위에 오른 뒤 파진찬으로써 병부령직에 임명되고, 655년 태자로 봉해졌다. 태종무열왕 7년(660년) 나·당 연합군이 백제를 칠 때, 김유신과 함께 5만 군사를 거느리고 백제의 사비성을 점령하였다. 이어 태종무열왕 8년(661년) 부왕이 승하하자 곧 즉위하였다.
즉위한 문무왕은 백제 무흥운동을 진압하고, 668년 고구려를 공략하여 멸망시키고, 이후 한반도를 수중에 넣으려는 당나라와 669년부터 전쟁을 시작하여 676년 당나라를 한반도로부터 축출하면서 최초로 한반도를 통일하는 대업을 달성한다.
681년 7월 21일에 56세로 서거하였는데, 유조(遺詔)에 따라 시신은 화장하였고, 경주 감은사(感恩寺) 동쪽 바다 대왕암(大王岩) 위에 장사하였는데, 이는 문무왕이 죽은 사람에게 산 사람들이 장례의 번거로움이 있기에 이를 간소화하여 검소하라는 그의 뜻이었다. 그런데, 그 뜻이 일본을 지키는 동해의 용왕이 되겠다는 민간전승설화로 현재까지 계승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