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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화. 낡은 티셔츠, 새로운 세계로

[ai 소설] 링위, 나의 가장 아름다운 스무살의 미제

by 나그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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낡은 승합차가 멈춘 곳은 시내 중심가에서 벗어난, 오래된 상가 건물 지하 주차장 입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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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가람은 낡은 철문을 열고 들어서자마자 코를 찌르는 땀 냄새와 가죽 냄새에 인상을 찌푸렸다.


"여기가... 체육관이요?“


낡은 샌드백들이 여기저기 걸려있었고, 링 주변은 온통 녹슨 쇠와 검은 고무 바닥으로 채워져 있었다. 그리고 그 중심에, 정 관장이 서 있었다.


정 관장의 복장은 한가람이 평생 봐온 '관장님'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녀는 몸의 근육이 그대로 드러나는 스포츠 브라와 짧은 팬츠 차림이었고, 탄탄한 복근에는 땀이 희미하게 배어 있었다.


한가람은 순간적으로 얼굴이 붉어지는 것을 느꼈다. 그녀의 좁고 고된 세계에는 저런 종류의 옷을 입는 사람 자체가 없었다. 노출이 많은 유흥업소를 가봤을지언정, 저렇게 건강하고 당당하게 신체를 드러내는 모습은 처음이었다.


"옷 갈아입어. 훈련복은 따로 없어. 네가 편한 대로 입고 해."

"네? 그럼 저 복장으로...?"

"뭘 놀라. 복싱이든 뭐든, 옷 따위가 중요하진 않아. 편한 게 장땡이지.“


한가람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탈의실로 들어섰다. 흙먼지를 뒤집어쓴 낡은 점퍼를 벗고, 평소에 입던 늘어진 티셔츠와 트레이닝 바지 차림으로 나왔다. 탈의실에서 나온 한가람은 샌드백을 치고 있는 정 관장에게 퉁명스럽게 물었다.


"운동 싫다는데, 왜 나여야 하죠? 제가 뭐... 격투에 소질이 있어 보여요?“


정 관장은 샌드백을 치는 것을 멈추고 한가람을 바라보았다.


"소질? 글쎄. 하지만 네가 그 4층 높이에서 떨어질 때, 네가 몸을 비튼 방향과 네 발이 닿았던 각도는, 네가 넘어지지 않으려고 돈을 벌려고 했던 '최고의 기술'이었다.“


정 관장은 낡은 트레이닝화를 신고 바닥에 섰다.


"이곳에서는 네가 넘어질 일 없어. 넘어지지 않고 돈을 벌 수 있어. 네 그 능력은... 네가 어머니의 병원비를 대는 가장 확실한 수단이 될 거다.“


한가람의 눈빛이 흔들렸다. 그 말을 부정할 수 없었다.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돈이 된다는 점은 그녀에게 가장 이성적이고, 가장 설득력 있는 논리였다.


"스텝 잡아.“


정 관장은 복싱의 기본 아웃복서 스텝을 한 번 보여줬다. 몸의 중심을 뒤에 두고 앞발은 가볍게, 끊임없이 움직여 상대와의 거리를 재는 동작이었다.

한가람은 멍하니 그 움직임을 지켜보았다. 정 관장은 한 번 더 느리게 동작을 보여줬다.


"해봐. 처음이니까 어설플 거다.“


하지만 한가람의 몸은 어설프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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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정 관장의 스텝을 그대로 따라 했다. 몸의 무게 중심, 발끝이 닿는 타이밍, 무릎의 유연한 반동까지. 평생 처음 해보는 복싱 스텝이었지만, 그녀의 몸은 마치 수십 년간 이 동작을 해온 것처럼 가볍고, 정확하고, 민첩했다.

정 관장은 샌드백에 기대섰다. 입이 벌어졌다.


'저건 가르쳐서 되는 게 아니야. 몸이 기억하고 있어. 4층에서 본 그 움직임은... 우연이 아니었어. 저 아이는... 격투를 위해 태어났구나.‘


훈련은 1시간을 넘겼다. 한가람의 늘어진 티셔츠는 땀으로 축축이 젖었고, 평소 노동으로 단련된 다리였음에도 불구하고 종아리 근육이 떨려왔다. 평생 처음 겪는, 뼈 속까지 파고드는 근육의 고통이었다.


한가람은 힘겹게 스텝을 멈추고 거친 숨을 내쉬었다. 그녀는 땀에 젖은 얼굴을 찡그리며 정 관장을 바라봤다.


"힘드네요. 이만하면 오늘은 되지 않았나요?“


고통에 대한 솔직한 호소이자, 훈련을 끝내고 싶은 게으름의 발동이었다. 정 관장은 땀을 닦는 대신 쓴웃음을 지었다.


"하긴, 1시간씩이나 했으니. 네 기준으로는 열심히 했겠지."

"네. 저 오늘 열심히 했죠? 다음 주에도 이 정도는 할 수 있어요.“


한가람은 스스로 '노력파답게 최선을 다했다'고 착각하며 만족했다. 정 관장은 아무 말 없이 그녀를 바라보았다. 저 놀라운 재능을 저 안일함이 갉아먹고 있다는 사실에 정 관장은 깊은 한숨을 삼켰다.


그그날 밤, 한가람은 다리가 풀려 걷는 것조차 힘들었지만, 체육관을 벗어나자마자 친구 박수아에게 전화를 걸었다.


"야, 박수아. 나 오늘 근육 다 터진 것 같아. 당장 나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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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가람은 박수아와 함께 번화가 뒷골목 포장마차에 앉았다. 온몸이 쑤셔 의자에 몸을 기대기도 힘들었지만, 포장마차의 알코올과 기름 냄새는 그녀에게 고통을 잊게 해주는 유일한 안식처였다.


"아, 진짜. 발목이 내 발목이 아닌 것 같아. 무슨 운동이 이렇게 힘드냐. 다신 안 해.“


한가람이 술잔을 비우며 징징거렸다. 박수아는 막걸리를 한 잔 따라주며 걱정스럽게 물었다.


"다신 안 한다고? 너 오늘 엄청나게 돈 많이 받는 일 시작했다고 했잖아. 갑자기 왜 격투기 같은 걸 해? 안 어울리게.“


"뭐, 나도 나름대로 이유가 있지."


한가람은 대충 얼버무리고는, 낮에 받은 충격을 화제 삼아 이야기를 시작했다.


"야, 근데 오늘 나 진짜 문화충격 받았다."

"왜?"

"그... 관장 있지? 나 데려간 사람. 여자인데 옷을... 와. 그냥 막. 브라 같은 거 입고 있더라. 나 태어나서 그렇게 옷 입은 사람 처음 봤어. 그것도 체육관에서.“


한가람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정 관장의 복장을 설명했다.


"뭐야, 너 피트니스나 그런 사람들 못 봤어? 요즘 운동하는 사람들은 다 그렇게 입어. 근육 보여야 운동이 잘 된다나. 몸도 진짜 장난 아니더라. 너도 이제 격투기 선수니까 나중에 시합 나가면 그런 거 입고 나가는 거 아냐?"


박수아가 킬킬거리며 한가람을 놀렸다. 한가람은 질색했다.

"뭐? 내가? 야, 내가 죽어도 그런 거 입고 시합 나갈 일은 없어. 그냥 낡은 티셔츠 입고 나갈 거야.“


한가람은 단호하게 말했다. 하지만 박수아는 웃음을 멈추지 않았다.


"난 모르지. 나중에 그런 옷 입고 나갈지도..."

"헛소리 하지 마!"


한가람은 쑤시는 다리를 애써 외면하며 오늘 훈련 한 것에 대해 자랑하듯 수다를 떨기 시작했고, 박수아는 그저 한숨을 삼켰다. 박수아의 눈에는, 온몸이 아파서 걷지도 못하면서 억지로 포장마차에 나와 고통을 잊으려는 친구가 그저 안쓰러워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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