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토1세, 서유럽에서 마자르족을 몰아내다
955년에 벌어진 레흐펠트 전투는 헝가리 통치자였던 불추, 영주들인 레헬, 수르가 동프랑크의 왕 오토와 싸운 전투를 말한다. 이 사건은 헝가리인들의 서유럽으로의 유입을 막은 결정적인 사건으로 여겨진다. 레흐펠트는 아우구스부르크 남쪽에 위치한 레흐강에 위치한 범람원이다.
오토는 반란을 일으킨 그의 아들 리우돌프가 스와비아 공작, 사위, 콘래드, 로레인 공작과 함께 작센지방에서 출발을 하여 마그데부르크에 도착하였고, 이와함께 리우돌프가 끌어들인 마자르족의 침략에 대한 보고를 받았는데 그로부터 6주나 지나서야 전쟁이 시작되었다.
오토는 자신의 부대를 네우부르크와 다뉴브강 부군의 잉골슈타트 부근에 집중시켰다. 이곳은 마자르족이 도강을 하는 것을 막아 설 수 있는 최적의 장소였다. 마자르족은 서쪽에서 남쪽으로 그리고 동쪽으로 돌아서 공격하는 U턴식의 방법을 채택하였고, 오토세는 그들의 그러한 루트를 파악하고 서쪽 루트를 강하게 압박하려고 계획하였다.
그래서 율리히 주교로 하여금 아우크스부르크를 방어하게 하고 오토는 군대를 모아 남쪽으로 남하하였다. 그런데, 이때 오토1세의 부대는 8천여명이었고, 마지르 족은 5만명이었다. 마자르족은 일러 강을 건너 율리히가 방어하고 있던 아우크스부르크를 포위하였다. 마자르 족은 8월 8일 동쪽의 성벽을 공격하였고 주교의 부대들은 온힘을 다해 방어하였다. 8월 9일 마자르 족은 더욱더 부대를 모아 광범위한 공격을 가하였다. 이때, 베르히톨트가 도착을 하였고 이는 동프랑크 부대의 반격을 의미하였다. 결국 포위는 중단되었고 마자르족은 다음의 공격을 준비하였다. 그리고, 이날 밤 디트팔트 백작의 부대가 오토의 부대에 합류하였다.
8월 10일 마자르 족이 강을 건너 공격했지만 몇 번의 공방 끝에 후퇴하였다. 오토는 이때가 공격할 타이밍이라고 여겨 곧바로 공격해 마자르족을 쳤다. 전통적으로 유목민들의 전략은 기마 전술에 활을 쏘는 것이 전통적 방식이었는데 오토1세는 그러한 시간적 여유를 주지 않았다. 불추는 오토1세의 부대를 끌어들여 함정을 파고 그 사이에 도망가려고 했으나 이도 여의치 않았다. 오토1세는 도리어 마자르족의 부대 깊숙이 파고들어가 휘집어 놓기 시작하였고 이로인해 마자르은 분열되어 뿔뿔이 흩어져버렸고 오토1세의 부대는 마자르족을 거의 학살이라고 할 정도의 대승을 거두었다.
이 대승에 대해 독일의 역사가 비두킨트는 이렇게 기술하였다.
대승 후 독일 영주들은 독일식으로 오토에게 방패를 들고 그를 황제라고 선언했다. 몇 년 후 오토는 로마로 가서 교황 요한 12세에 의해 신성로마제국 황제의 자리에 올랐다.
이 전투는 중세 유럽 전쟁을 정의할 기병대의 상징적인 승리로 여겨진다. 역사학자 폴 K. 데이비스는 이렇게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