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결과

박준 시인의 「연년생」, 「능곡 빌라」, 「능곡빌라3」

by 이영

아랫집 아주머니가 병원으로 실려갈 때마다 형 지훈이는 어머니, 어머니 하며 울고 동생 지호는 엄마, 엄마 하고 운다 그런데 그날은 형 지훈이가 엄마, 엄마 울었고 지호는 옆에서 형아, 형아 하고 울었다

―박준, 「연년생」


몇 해 전 엄마를 잃은 일층 문방구집 사내아이들이 창문을 활짝 열어두고 잠을 잔다 벌써 굵어진 종아리를 서로 포개놓고 깊은 잠을 잔다 한낮이면 뜨거운 빛이 내리다가도 이렇게 아침저녁으로 찬바람이 들면 덜컥 겁부터 먼저 나는, 떠나는 일보다 머무는 일이 어렵던 가을이었다

―박준, 「능곡 빌라」


지호는 어젯밤

태어나 처음으로

혼자 잠을 잤습니다


하지만 수학여행에서

돌아온 지훈이를 보고도

크게 반기지 않았습니다

사실 한순간도

곁을 떠난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박준, 「능곡빌라3」


다윗의 아들이 죽었다. 다윗이 자신의 신 앞에서 악한 일을 행하여 얻은 자식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자신의 아이가 앓는 동안 곡기를 끊고 밤새도록 여호와 앞에 엎드렸다. 그러나 이레 뒤, 다윗의 아들은 죽고 말았다. 이후 다윗은 많이 이상했다. 신하들이 그를 땅에서 일으키려 하고 먹이려 할 때는 듣지도 않았으나, 자신의 아이가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나서는 일어나 씻고, 여호와께 경배하고, 신하들에게 명령하여 음식을 차려 먹었다. 부고를 들은 후 한순간에 냉철해진 그의 모습은 경악스럽기까지 하다. 너무 충격을 받았나? 더 이상 슬프지 않나? 이후 다윗은 신하들의 궁금증에 이렇게 답한다.


이르되 아이가 살았을 때에 내가 금식하고 운 것은 혹시 여호와께서 나를 불쌍히 여기사 아이를 살려 주실는지 누가 알까 생각함이거니와

지금은 죽었으니 내가 어찌 금식하랴 내가 다시 돌아오게 할 수 있느냐 나는 그에게로 가려니와 그는 내게로 돌아오지 아니하리라 하니라

―사무엘하12:22-23


정리하면 이렇다. “내가 여호와 앞에서 금식하고 울면 나를 불쌍히 여겨서 아이를 살려주실까 싶었지만, 죽어버렸다. 이후에는 다시 살릴 수 없으니 더 이상 금식할 수도, 슬퍼하고만 있을 수도 없다. 내가 죽을 수는 있지만, 그는 다시 내게로 돌아올 수 없다.” 이 말을 신앙적으로 풀어보면, 그는 인생의 주인을 자신의 여호와로 여겼으므로 자신이 행한 악한 행위에 대한 결과를 받아들이고 다음으로 나아간 것이다. 여기서 주목해볼 마음이 있다. 결과를 받아들이다. 그는 과연 더 이상 슬프지 않았을까? 조금만 짐작해보자면, 여전히 슬펐을 것 같다. 그도 인간이자 부모니까. 그러나 7일간의 과정을 통해 받아들인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이 죽었다는 사실을.

박준의 시 「연년생」은 사랑하는 자의 죽음을 받아들이는 과정의 시작이다. 형 지훈이는 엄마를 “어머니, 어머니”하고 부르다가 엄마가 완전히 떠났을 “그날”에는 “엄마, 엄마”하고 운다. 동생 지호는 엄마를 “엄마, 엄마”하고 부르다가 “그날”에는 형을 찾아 “형아, 형아”라고 운다. 이 과정은 분명 스스로 시작한 시작이 아니다. 그러나 엄마는 떠나버렸고 형제는 남았다. 그래도 형이라고 의젓하게 ‘어머니’라는 호칭을 사용하던 지훈이 한순간에 무너져 동생처럼 ‘엄마’를 외친다. 이제는 엄마가 없음을 직감한 지호는 자신의 곁에 남은 형을 찾는다. ‘어머니·엄마→지훈·지호’의 관계가 ‘엄마→지훈→지호’의 관계로 한 단계식 떨어진 것이다. 연년생은 이렇게 끝난다.


하나의 비극처럼 끝난 것 같은 이야기를 품은 채 책장을 한 장 더 넘기면 3부가 시작된다. ‘한 이틀 후에 오는 반가운 것들’이라는 대목이다. 이제 반가운 것들을 맞이할까 싶은 마음으로 한 장을 더 넘기면 「능곡 빌라」가 나타난다. “몇 해 전 엄마를 잃은 일층 문방구집 사내아이들”이라는 말로 보아 이 시의 주인공은 지훈이와 지호인 것 같고, 창문을 열고 잠든 상황도 보니 꽤 후덥지근한 낮인 듯하다. 그러나 아이들은 붙어서 잔다. 따끈한 낮잠에는 열과 땀이 동반되는 법인데도. “벌써 굵어진 종아리”라는 말은 아이들이 꽤 컸음을 보여준다. 두 아이는 종아리를 포개놓고 깊은 잠을 잔다. 다리가 붙어 있다면 X자 혹은 V자로 맞대어 누워 있을 테다. 앞으로 나아가기 위한 부위가 서로 엮인 채 누워 있는 자세다. 「연년생」과 「능곡 빌라」 사이의 몇 년 동안 지훈과 지호는 함께 나아갔을 것이다. 그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알지 못하지만, 엄마의 부재를 받아들이고 극복하기까지 서로 의지할 대상은 연년생 형제인 서로 뿐이었으니. 그렇기 때문에 형제는 후덥지근한 열기 때문에 “뜨거운 빛”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서로를 놓지 못했다. 조금만 지나면 “아침저녁으로 찬바람이 들”어 “덜컥 겁부터 먼저 나”버리니까. 이에 화자는 이렇게 말한다. 떠나는 일보다 머무는 일이 어렵다. 반복해서 찾아오는 상실과 버팀의 요동 속, 이 과정을 툭 놓아버리고 떠나는 일보다 서로를 지지하며 꾸준히 버티는 일이 더 어려울 테니까.

여기서 하나 더 볼 부분은 시의 제목이다. 간극에 대한 부연 설명 없이 시작과 끝, 혹은 어떤 이면만 이야기해주며 중간을 짐작하게 만드는 것이 박준 시의 매력이다. 「능곡 빌라」 시리즈는 이 매력이 극대화되는 이야기들 중 하나다. 시는 「연년생」에서 ‘연년생2’가 아닌 「능곡 빌라」로 이어졌다. 엄마의 죽음에 대한 직면을 지나 연대와 협력의 과정을 거쳤을 아이들은 이제 ‘연년생 형제’가 아닌 ‘능곡 빌라에 사는 그 형제’가 되었다. 우리는 ‘연년생1’이나 ‘능곡빌라0’ 같은 시를 읽지 않아도 아이들을 느낄 수 있다. 소중한 무언가를 상실해본 기억이 하나씩은 있으니까. 비단 가까운 이의 죽음 뿐만이 아니더라도, 소중한 물건이나 인연, 스스로에 대한 상실을 포함해서. 때문에 “어머니”에서 “엄마”로, “엄마”에서 “형아”로 무너지기까지 한 아이들을 완전히 이해할 수는 없지만, 몇 년이 지나 다리를 맞대고 낮잠을 잘 수 있게 된 상실과 연대, 회복의 간극을 짐작해볼 수는 있다.


이야기는 이어서 「능곡빌라3」으로 나타난다. 「연년생」과 「능곡 빌라」가 수록된 시집인 �우리가 함께 장마를 볼 수도 있겠습니다�와 「능곡빌라3」이 수록된 �마중도 배웅도 없이� 사이에는 수 년이 있기에, 지훈이와 지호를 만나는 것도 수 년 만인 듯하다. 여기서 지훈이는 수학여행을 다녀왔다. 15살 혹은 18살 즈음 되었을 것이다. 지호는 “태어나 처음으로/ 혼자 잠을 잤”다. 앞선 「능곡 빌라」에서 낮잠을 함께 자듯, 매일 밤을 같은 지붕 아래에서 보낸 듯하다. 그리고 마침내 지훈이의 수학여행을 다녀온 날, 지호는 형을 “크게 반기지 않았”다. 단순히 지호가 컸기 때문이 아니다. “한순간도/ 곁을 떠난 적이/ 없기 때문”이다. 지호와 지훈은 줄곧 함께였다. 「연년생」과 「능곡 빌라」의 사이 시절, 「능곡 빌라」와 「능곡빌라3」의 사이 시절의 연대와 협력은 지호와 지훈이 떨어져 있어도 함께하는 것 같은 관계로 만들어 놓았다. 떨어져 있어도, 눈에 보이지 않아도 느낄 수 있는 존재의 감각이다. 여태까지 나와 함께 있었고, 지금도 함께 하고 있으며, 앞으로도 나와 함께 할 것이라는 확신. 세상에 하나 남은 혈육이자 동일한 상실과 슬픔을 겪은 유일한 관계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다시 다윗의 이야기를 하자면, 그의 아들의 죽음은 기이하리만큼 냉철한 아버지의 이야기로 끝나지 않았다. 이후 그는 자신의 아내를 위로하고 다시 아이를 낳는다. 그 아들이 솔로몬이고, 솔로몬의 이름은 여디디야이며, 여호와께 사랑을 입었다는 뜻이다. 내리사랑이다. 신이 다윗을, 다윗이 아들을, 그 아들과 다음의 아들을, 또 신이 그 아들을 사랑했기 때문에 태어날 수 있었고, 다윗과 아들은 다시 신을 사랑하는 내리사랑이자 순환하는 사랑이다. 지호와 지훈의 연대 또한 내리사랑의 결과물이다. 엄마로부터 내려온 사랑이 지훈과 지호에게 머물러 둘을 단단히 붙여두었다. 형제 또한 엄마를 사랑하지 않았다면 서로를 사랑하며 연대하지 못했을 테다. 순환하는 사랑이 ‘함께’를 만들어낸 것이다. 함께로 연대하는 사랑은 상실만으로 끝나지 않는다.

이 연대로 인한 삶은 죽은 사람에 대한 일종의 애도가 되기도 한다. 우리 형제가 이만큼 잘 자랐다는 표시. 당신의 죽음과 사랑을 밟고 이렇게 살고 있다는 뜻. 상실된 것들의 이후를 잘 찾아보면 이어지고 남은 무언가를 반드시 찾아낼 수 있을 것이다. 서로가 눈에 보이지 않아도 함께한 지호와 지훈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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