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

노매드

by 손진일

이사를 3년 만에 하면서 참 힘들다는 느낌이 들었다. 젊었을 때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무거운 중압감이 스트레스를 증폭시켰다. 벤치프레스를 빡세게 들어 올릴 때와 차원이 달랐고 게다가 노인은 스트레스에 예민하고 취약하다고 다들 말하니까 은근히 걱정되었다. 더구나 혼자서는 하기 힘든 이사라는 종합 행위 예술을 홀로 처리해야겠기에 마음이 눌려서 더 그런지도 모르겠다. 진행을 방해하는 여러 가지 난관을 해결해야 했기 때문이다.

이사의 본질이 무엇인가? 거주하는 장소를 다른 곳으로 이동하는 것이다. 조건의 득실을 따져 결정하고 실행 모드에 진입했으나 이사를 계획하고 추진하는 첫 단추부터 잘 끼여지지 않았고 눈앞에 펼쳐지는 모든 문제가 태산처럼 보였다. 내 능력으로 과연 해결할 수 있을까 싶은 많은 조건과 문제들이 벽처럼 여겨졌고 포기할까 하는 마음도 들었다. 믿는 지인들에게 기도를 부탁하고 그냥 매달렸다. 잠시 거주하는 집도 이렇게 까다롭고 여러 가지 익숙한 것들을 떨치기가 힘들다. 오래 거주하던 집일수록 문제는 더 심각해질 수 있다. 그렇다면 영혼이 깃들이고 지내는 육신이라는 장막을 떠날 때는 어떨까? 말로는 쉽게 하늘나라 가겠노라고 큰소리를 치지만 그렇게 담대한 사람이 과연 몇 명이나 될까? 유행가 가사처럼 떠날 때는 말없이 가 멋이 있지만 실제로 그렇게 하는 이성적인 사람이 얼마나 될까?

난제라고 여기던 것들이 나도 모르는 사이에 하나씩 해결되어 마침내 새로운 거처로 이주를 할 수 있었다는 것은 사실상 기적이다. 돌아보면 볼수록 내 힘과 능력으로는 결단코 할 수 없는 진행 과정이었으나 소위 배 째라는 식으로 그냥 맡기고 주변의 기도하는 분들께 널리 광고하다 보니 하늘에 계신 분이 문제를 해결해 주신 것임을 확신하게 되었다. 집을 찾는 것은 물론 주택 전세금 마련을 위한 금융과 각종 문제를 알아보고 처리하기에는 고양시에서 의왕시로 왕복 6시간의 출퇴근하는 상황이라 현실적으로 거의 불가능한 수준의 여건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모든 문제가 그냥 시간이 가면서 저절로 풀린 것은 마치 꽃이 피듯 싹이 트듯 그렇게 내가 모르는 사이에 해결되었다. 슬로비디오로 꽃이 피는 모습을 볼 때의 경이로움이 떠오른다. 그렇다 나는 볼 수 없는 것들이 볼 수 있는 것보다 몇백 배가 아니 몇만 배는 더 되리라. 나는 그저 막연하게 기도하며 기다렸을 뿐이다. 아등바등해 본들 인생은 노답임을 나이가 드니 비로소 깨닫게 되었고 기도하면 해 주시리라는 단순한 믿음으로 지냈다. 염려한들 키가 한자 자라는 것이 아니라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우여곡절을 겪으며 이사를 하고 나니 일터가 가까워서 좋았다. 저녁도 해 먹을 수 있어서 삶에 윤택이 난다. 이렇게 어렵고 귀찮고 불편한 것들을 극복하면 새로운 것들이 보인다.

이사에서 필요한 마음가짐이 무엇일까? 단순히 물리적인 이동에 앞서 정신적으로 극복해야 할 것들이 더 많고 골치 아프게 하는 것은 아닌가 싶다. 익숙한 것으로부터 떨어져야 하는 불편함은 사실상 단순히 이삿짐을 옮기는 것보다 훨씬 더 크고 무겁다. 익숙함을 포기하는 일과 애착을 떨쳐내는 일은 만만하지 않다. 안 보던 책들도 이런저런 핑계로 이삿짐에 포함되고 의미가 조금이라도 있다는 생각이 들면 버리려고 머뭇거리다가 다시 픽업한다. 이게 인간의 본능이 아닌가 싶다. 미련이 판단을 어지럽힌다.

오래된 사진이 퇴색되고 너덜거리는 앨범에 달라붙는 것처럼 보인다. 볼까? 평소에 안 본다. 이사할 때만 보는 것 같다. 기억이 너덜거리듯 사진도 낡고 퇴색되었다. 그런데도 결국 이삿짐에 끼어들고야 만다. 사진은 과거다. 과거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이사할 때 한번 눈길을 줄 뿐 그 이상의 의미가 없다. 그리고 다음 이사를 할 때 눈도장을 찍으려고 따라온다.

이 땅에 살면서 몇 번이나 이사를 하는지 알 수 없다. 사람에 따라 평생을 한 곳을 지키며 사는 사람도 더러는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은 이사를 경험한다. 젊었을 때부터 바깥세상으로 뛰쳐나간 나 같은 사람은 이사에 어느 정도 익숙한 편이라 요령도 생겼는데 이사는 천천히 더욱 천천히 느림보로 해야 스트레스를 덜 받는다는 것을 해외에서 살면서 깨쳤다.

고향을 지키든 타향으로 나가 살든 막론하고 사람은 일생일대에 반드시 해야 하는 절대적인 이사가 있다. 그 이사야말로 진정한 이사이며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그토록 사모하는 대단원이다. 마치 관현악의 마지막 웅장함 같은 울림이다.

For our Citizenship is in Heaven, from whicj we also eagerly wait for THE SAVIOR,

THE LORD JESUS CHRIST, WHO WILL TRANSFORM our lowly body that it may be conformed to HIS GLORIOUS BODY, according to the Working by Which HE IS ABLE TO SUBDUE all things TO HIMSELF.(빌립보서3: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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