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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연치유 Dec 30. 2023

오펜하이머는 힘의 상징이다

크리스토퍼 놀란의 영화, <오펜하이머>를 보고

영화 오펜하이머가 개봉한지 시간이 많이 지났다. 그렇지만 과학을 공부하는 입장으로서 이 영화를 리뷰하지 않을 수 없다는 생각에 이 글을 쓴다.



 놀란의 <다크나이트>가 좋다


 나는 히어로 영화를 좋아한다. 강한 적, 그리고 이를 물리치고 성장하는 주인공. 그 서사가 언제나 더 성장하고 더 멋있는 사람이 되고 싶은 나로선 닮고 싶은 존재다. 그러나 그 중에서 놀란 감독의 <다크나이트>는 유일하게 닮고 싶지 않은 히어로였다.


 어두운 코스튬. 첫 등장과 함께 펼치는 것은 화려한 액션이 아닌 주먹과 피. 그런 것들이 뭉친 다크나이트 배트맨은 멋있는 사람이기보다 공포였다.


 그러나 친구보다 적을 더 가까이하라는 말이 있지 않은가? 너무 극단인 존재이기에 오히려 그런 선택의 이유에 공감이 갔다. 처음으로 '히어로'의 영화가 아니라, '영화'의 히어로를 본 것 같았다. 


 그래서 <다크나이트>는 내 최고의 영화가 되었다. 닮고 싶지 않은 히어로로도 이 정도의 영화를 만들 수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결과 놀란 감독의 팬이 되었다.


 그렇기에 이번에 관람한 <오펜하이머>는 그 내용을 하나도 모름에도, 설명 하나 참고하지 않았다. 놀란 감독은 분명 어떻게든 나를 즐겁게 만들어 줄 것이라 믿고 말이다. 



과학과 정치, 힘의 이동은 어디에서나 일어난다


 영화를 다 보고나서 본 영화의 주제가 순수하게 오펜하이머의 일대기나, 핵폭탄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것들은 사실 단순한 소재일 뿐이다. 주제를 더 잘 표현하기 위한 최적화된 소재 말이다.


 그래서 어떤 것이 주제일지 영화 전반을 돌이켜보니, 가장 두드러지는 연출적 특징이 떠올랐다. 그것은 바로 색깔이었다.


 컬러로 촬영된 오펜하이머와 흑백으로 촬영된 스트로스 제독. 이 두 사람의 대조야말로 영화 전반의 핵심과 같은 연출이었고, 그만큼 주제와 밀접한 연관이 있을 수 밖에 없다.

영화에서 2개의 인물을 나누어 조명하다가 결국 하나로 합쳐진다.

 이 중에서 집중해야할 부분은 스트로스 제독이다. 비록 오펜하이머의 인생 자체에 집중된 영화였지만, 스트로스 제독은 초반부터 '억지로' 넣을 정도로 비중 있는 인물이 아니다. 오히려 오펜하이머와 함께 작업한 군인이 실제 시간 상으로는 더 오랜 시간을 맞댔을 것이다.


 그렇기에 스트로스 제독의 장면에 초점을 맞추어 영화의 주제를 나름 생각해보았다. 오펜하이머에게서 제독이 빼앗아간 것, 제독이 얻으려 한 것, 그러나 오펜하이머처럼 자신도 빼앗긴 것.


 한 단어로, '권력'이었다.


 그러나 권력이 나쁘다, 같은 주제는 절대 아니었다. 영화 내에서 오펜하이머의 심문이 핵심이었지만, 그것을 권력에 의한 탄압이라고 볼 수 있을까? 스트로스 제독의 앙갚음이 권력에 기반해서 일어날 수 있었긴 하겠지만, 권력 자체보다는 스트로스 제독의 개인적인 감정을 비판하고 싶었을 뿐이었다.


 그래서 필자가 집중한 것은 권력의 흐름이었다. 왜냐하면 오펜하이머가 권력을 잃은 장면, 그리고 스트로스가 권력을 잃은 장면이 색이 다르게 대조되었기 때문에 분명 그 사이에 권력의 흐름이 있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자 다음과 같은 그림이 그려졌다.


 아인슈타인과 같은 대가의 과학계 내에서의 권력 -> 오펜하이머가 가진 핵 개발에서의 권력 -> 스트로스의 오펜하이머 탄압, 수소 폭탄 개발을 통한 권력 쟁취 -> 스트로스의 취임 실패, 오펜하이머의 훈장을 통한 불안정한 지위 복권


 중요한 점은 영화의 마지막이 불안정한 권력 획득으로 마무리되었다는 점이다. 굳이 아인슈타인이 자동차를 타고 와서 오펜하이머와 대화하는 장면이 결말부에 왜 필요했을까? 분명 권력 자체가 언제든지 다른 이에게 넘어갈 수 있는 것임을 강조하기 위해서일 것이다.

역시 자네야



정리 : 권력의 순환성


 결국 필자가 생각한 영화의 핵심 주제는 '권력의 순환성'이다. 권력이라는 것은 영원하지 않고, 언제든지 다른 이에게 가거나 돌아올 수 있으며 그것은 자의로 할 수 없는 영역에 있다. 마치 마지막에 오펜하이머가 다시 훈장을 받았음에도 자신을 그렇게 만든 과학자 중 한 명과 악수를 나누어야했던 굴욕을 겪은 것처럼 말이다.


 과학과 정치. 서로 다른 두 분야는 그 무엇보다도 먼 거리인 듯 싶으면서도 동시에 근대 이후의 사회에서 가장 밀접한 연관성을 가진 분야이기도 하다. 오펜하이머는 핵에 대한 영향력을 국가에게 넘기고 찬밥 신세가 되었지만, 동시에 그가 핵을 연구할 수 있었던 것도 당시 전쟁이라는 특수한 정치적 상황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기에 권력은 정치의 영역에만 머무는 것이 아닌, 과학의 영역에도 흐르는 것이다. 그만큼 과학자들도 정치인에게 이야기를 전달할 방법에 대해 더 깊이 연구해봐야할 것이다.  


평점 : ★★★★★

영화를 해석하는 맛과 대중성을 동시에 챙기는 작품을 찾기는 정말 쉽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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