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전에 나를 버리고 간 T군과 한국인 Y양, 그리고 나 셋이서 모여 일전에 못 한 뒤풀이를 하기로 했다. T군이 관광지를 가서 놀자고 하길래, 어딜 가든 관광지로 느껴지는 한국인인 나는 '그런 곳이 있어?'라고 물어봤다. 그렇게 정해진 오늘의 목적지는 청차우 섬이었다.
청차우 섬은 란타우 섬의 동남쪽에 얼마 떨어지지 않은 위치에 있다. 이 말은 무슨 뜻이냐, 청차우 섬이 내 숙소보다 홍콩국제공항에 더 가깝다는 뜻이다. 그래서 홍콩섬 센트럴에 있는 페리를 탈 때에 왠지 공항이 앞으로 일주일 정도밖에 남지 않은 내 교환학생 일정을 보채는 것 같아서 기분이 싱숭생숭했다.
본래 청차우 섬은 어선과 해안물 식당으로 가득 찬 독특한 해안가로 유명하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모래사장이 넓게 펼쳐져있고, 경치 좋은 하이킹 코스에 바다의 신을 기리는 거대한 사원 등등 번잡한 홍콩 도시 생활을 벗어나기에 좋은 곳이다. 한마디로 도시에서 일하다가 가끔 휴가를 내서 강원도 산골이나 남해 해안가를 구경하듯이, 이곳이 홍콩에서 '조용한' 곳이라는 뜻.
청차우 섬에 도착한 시간은 약 45분 후였다. 배에서 내리니 처음 보이는 풍경은 앞바다 가득 줄지어 선 어선들이었다. 이 어선이라는 것이 오징어잡이 배처럼 커다란 것만 있는 것이 아니라, 대부분 사람 4명 정도 작업하면 좋을 듯한 조그만 배였다. 사람 한 명만 탈 수 있을 것 같은 나룻배도 보일 정도니 말이다.
하지만 '조용하진' 않았다. 금요일이라고 해도 낮 12시에 왔으니 분명 사람이 없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예상외로 거리가 꽉 차서 걸어가는 데에 양옆을 계속 신경 써야 했다. 주말엔 도대체 얼마나 번잡할까 생각해 보니 저절로 손사래가 처졌다.
우선은 T군이 안내하는 대로 따라갔다. T군은 여기에 올 때마다 자기가 항상 오는 카페가 있다며, 일단 그곳으로 가서 음료를 마시며 천천히 대화하자고 했다. 날씨가 덥기도 했고, 생각해 보니 홍콩에서 차찬탱이 아닌 카페를 가본 적이 없었다.
참고로 차찬탱은 홍콩에서 커피와 밀크티, 토스트나 마카로니 등 브런치와 함께 중국식 차나 커피를 먹을 수 있는 홍콩식 카페다. 다만 차찬탱에서 프라푸치노 같은 메뉴를 기대하기에는 조금 어려운 점이 있어서... 차갑고 단 음료는 언제나 환영인 나였기에 T군을 곧바로 따라갔다.
사람들이 많이 지나는 거리에서 조금 벗어나 조그만 놀이터를 지나가니 T군이 가려고 하는 카페가 나왔다. 큰 거리와 달리 이쪽은 사람들이 거의 없고 가게도 없어서 정말 현지인 사는 곳이구나 싶었는데, 카페에서 주문한 음식도 정말 시각적으로 아름다웠다. 음료라기보다는 칵테일이라는 말이 더 어울릴 정도로 디자인과 맛 모두 잡은 음료여서 사진을 찍어 기록을 남겨야만 한다는 확신이 들었다.
가령 내가 먹은 음료(가장 오른쪽 사진)는 은하수의 별을 테마로 해서 떠있는 장미잎과 별사탕 같은 작은 알갱이들을 휘저으면 그것들이 별가루처럼 가라앉았다. 그 모습은 마치 성운같이 웅장한 느낌이었다 - 음식에 웅장하다는 표현이 어울릴지는 모르겠지만, 확실히 디자인이 그 정도로 감동적이었다.
그 후 사원도 들르고, 주택 단지(2층) 사이를 지나가다 보니 해변가에 도착했다. 해변가는 해수욕을 하기에는 좁았고, 그저 산책용으로 적합한 정도였다. 걷다 보니 헬기가 한 대 해변가의 끝으로 내려오는 것을 보고 저기에 헬기 정류장이 있겠구나 싶었다 - 헬기가 바다 근처로 가니 물안개가 일어난다는 점은 이날 처음 알게 되었다. 사실 거기보다 더 가면 동굴이 나온다는데, 그거 하나 보자고 쭉 걸어가기는 피곤하다는 Y양의 말에 다시 배를 타는 곳으로 돌아왔다.
돌아가기 전에 시장가를 돌면서 Fish ball을 먹어보았다. 한마디로 어묵인데, 공모양으로 만든 어묵에 카레/마라/간장 등의 소스를 한 종류 살짝 묻혀서 먹는 것을 생각하면 된다. 한국에서 파는 어묵에 비하면 밀도가 낮아 한 입 크게 먹어도 금방 뱃속으로 들어갔다. 홍콩의 다른 곳에서도 먹을 수 있지만, 청차우 섬의 Fish ball은 그 크기가 정말 성인 주먹만 할 정도로 거대한 것이 유명하다.
돌아오는 배 안에서는 다들 피곤해서 조금 잠들었고, 연구실로 돌아가야 하는 Y양의 사정으로 센트럴에서 헤어졌다. 물론 이 기회에 나는 소호의 '카우키'라는 고기국수집에서 카레국수를 하나 먹고 숙소로 돌아왔다. 뭔가 떠나기 전 두 친구와의 마지막 만남이 너무 짧게 끝나서 아쉬웠지만, 남은 시간을 알차게 썼다는 점에 위안을 삼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