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모든 사람들이 애착의 중요성을 안다. 아주 어릴 적 부모와의 애착관계가 향후 아이들의 발달에 큰 영향을 미친다는 걸 다를 알기에 부모들은 혹여나 자신이 아이에게 나쁜 영향을 미치고 있는 건 아닐까 불안해하고 전전긍긍한다.
상담에서도 아이가 오면 부모와의 관계를 중요하게 살핀다. 100% 부모에게 받은 영향으로 아이가 어려움을 겪는다고 단정 지을 수는 없지만 어쨌거나 많은 영향을 끼쳤고 앞으로도 끼칠 걸 알고 있기 때문이다.
어떤 아이들은 미숙하고 불안하고 자신도 추스르지 못하는 부모 밑에서 살아가는 아이들 있다. 학대 범주의 환경에서 자라고 있는 아이들을 만나게 되면 이 아이들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하는 안타까움과 무력감을 느낀다.
충분한 양육을 받지 못하는 것만 아니라 학대로 인한 외상 징후까지 보이는 아이들은 단순히 부모와의 분리가 답일까? 싶다.
막상 그 부모를 만나면 아이를 사랑하고 걱정한다. 그러나 부모 자신도 너무나 많은 상처를 안고 있기에 아이를 먼저 살필 수도 없는 지경이 대부분이다. 그런 부모의 자녀들은 이미 자신의 부모가 자신들을 돌볼 수 없다는 걸 알고 있다.
아이들은 불안한 부모가 자신들을 떠날까 봐, 버릴까 두려워하며 더욱더 부모에게 매달리고 돌봄을 받지 못하고 학대받는 환경을 꿋꿋이 견딘다. 그 아이들을 마주하면서 느끼는 무력감은 어쩌면 아이들이 느끼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변화가 불가능한 현실에 아이들을 방치하고 있는 것 같아 죄책감에 우울해지고 미안해진다. 하지만 상담사가 그 상황에서 할 수 있는 건 어쩌면 안 되는 것에 매여 낙담하기보다는 아이들이 그 암울한 환경에 매몰되지 않고 다른 세상과 그 세상에 다른 사람들이 있다는 걸 알게 해주는 게 더 나을 수도 있다.
A 와 B는 자매이다. 부모의 불화와 이혼, 이후 엄마의 혼란스러운 모습과 아버지의 부재, 정상적인 양육환경의 부재로 자매가 자라고 있는 환경은 최악이었다. 끊임없이 자살을 생각하는 엄마와 함께 있는 아이들은 매일이 벼랑 끝에 매달려 있는 것과 다를 바 없었다.
아이들이 원할 때가 아닌 자신들의 필요에 의해서만 사랑하고 찾는 부모의 태도에 아이들은 허기지고 애가 탄다.
부모는 자신들이 변화해야 한다는 생각도 의지도 없고, 실행은 더욱더 하지 못한다. 그들을 설득하고 변화를 유도하는 건 현실적으로 불가능에 가까워 보인다. 원하지 않는 도움을 주기에는 현실적으로 많은 제약이 따른다.
이런 상황에서 상담사는 무엇을 해야 하고 할 수 있단 말인가!
정서적 방임이 확연하지만, 부모 노릇에 관심이 없는 부모에게 무엇을 알릴 수 있을까 싶다. 알린다고 하더라고 그들이 무엇을 하려고 할지 의문이다. 아마 그들도 방임 내지는 학대가 있는 환경에서 성장했을 것이다. 자신이 양육되었던 방식을 자신의 아이에게 그대로 하고 있을 뿐이다.
상담사는 해야 하는 것과 할 수 있는 것 사이에서 갈등한다. 중요한 건 해야 하는 것에 매달리다 할 수 있는 것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
자매에게 할 수 있는 것이 있다면 자신의 환경에서 삶의 이유를 찾고자 애쓰는 것보다 다른 곳을 바라볼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자신의 모습이 처한 환경에 빗대어 결정되지 않도록, 부모에게 조금 떨어져 바깥세상을 볼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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