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사이의 관계에서 경계를 세우고 거리를 조절하는 건 참 어려운 일이다. 어렵다는 말이 하기 힘들다는 의미로 생각되지만, 적절한 경계와 거리가 뭔지 알기 어렵다는 게 더 현실적이다. 이제는 사람사이의 관계에서 경계가 필요하고 적절한 거리를 가져야 한다는 걸 우리는 대부분 알고 받아들인다. 그러나 막상 경계를 세우고 거리를 가지려 하면 어떻게 얼마나 해야 하는지 분명하게 떠오르지 않는다.
경계를 세우고 거리를 조절할 필요가 있다는 건 쉽게 알 수 있다. 내가 맺고 있는 관계가 부담스럽고 힘들며 그로 인해 스트레스를 받는다면 나의 관계의 경계와 거리를 살펴봐야 한다. 관계가 힘들고 스트레스를 받는다면 안 만나면 되는 게 아닐까?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럴 수 있다면 간단하다. 그러나 그럴 수 없다고 생각되는 관계라면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그 예로 부모와의 관계, 남편, 자녀, 형제가 가장 어렵고, 학교나 직장에서 만나는 관계도 쉽지 않은 건 마찬가지다. 때로는 끊어야 하는 관계도 있다. 학대와 폭력이 가득한 관계로 변화를 위한 노력이 무의미한 관계라면 끊어내야 한다.
상담장면에서도 관계의 어려움을 호소하시는 분들을 많이 만나다. 그들의 대부분은 관계의 경계가 건강하지 않다는 걸 알 수 있다. 그들에게 쉽게 설명하기 위해 두 사람과의 관계를 양팔저울에 비교한다. 좋은 관계를 유지하게 위해서는 양팔저울이 어느 한쪽으로 기울지 않도록 끊임없이 살피고 서로 노력해야 한다. 한쪽이 기운다면 분명히 한쪽에서는 억울한 마음이 생긴다. 이것이 지속된다면 관계에서 갈등이 불거질 수밖에 없다.
상담에 오시는 분들 중에 자신이 상대에게 맞춰 준다는 말을 하시는 분들은 불균형적인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그동안 그렇게 해야 평화가 유지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자신이 이렇게 상대에게 맞추어준다면 언젠가는 상대가 이걸 알아줘 고마워하거나, 자신에게 배워 언젠가 자신에게 똑같이 해줄 거라는 기대를 품는다. 그러나 세월이 흘러도 그렇게 되지는 않았고 더 이상은 상대에게 맞춰줄 에너지가 남지 않은 상태가 되어 버린다.
이렇게 균형이 맞지 않는 관계를 유지하려면 한쪽에서 무지하게 애를 써야 한다. 이렇게 하는 시간이 길어진다면 당연히 맞춰주는 쪽의 에너지는 바닥을 드러내고 한계에 이르게 된다. 한계에 이르렀다는 자신이 보낸 신호를 무시하면 탈이 나기 마련이다. 대표적으로 드러나는 탈이 우울과 스트레스로 인한 신체증상이다. 이런 증상들을 경험하게 되면서 그제야 깨닫게 된다. 뭔가 잘못되고 있다는 걸...
우울과 신체 증상으로 인해 더 이상 상대에게 맞춰주는 걸 못하게 되면서 갈등이 심화되는 경우도 있다. 상대는 자신의 불편한 것들을 -대표적인 게 감정이다- 맞춰주는 사람이 해결해 주는 걸로 해결했는데 더 이상 그러지 않게 되면 어쩔 줄 모르게 된다. 자신이 겪고 있는 문제들을 스스로 해결하는 능력이 없던 사람이 어느 날 갑자기 해결 능력이 생길리는 만무하기 때문이다. 당연히 이전의 방식대로 자신의 문제를 해결해 주던 대상에게 해내라고 요구하게 된다.
이러한 요구를 받게 되면 우울과 스트레스로 여기저기 아픈 데다, 뭔가 잘못되었다는 걸 감지하기 시작한 당신은 예전의 그 사람이 아니다. 때문에 요구를 들어주지 않게 된 거나 들어주기 힘들게 된다. 당연히 갈등은 심화되고 요구는 더욱 강해지게 된다. 상대는 그것만이 자신이 유일하게 할 수 있는 자신이 겪는 이 불편한 문제들을 해결하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당신이 현재 처한 상황과 비슷한가? 그렇다면 하루라도 빨리 경계 세우기 작업을 시작해야 한다. 고되고 힘든 작업이 될 것이다. 그러나 이 관계를 유지하는 것도 고되고 힘들다. 고되고 힘든 것이 나의 삶의 질을 높이고 긍정적인 삶을 영위하게 되며 동시에 상대를 성장시킬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라면 당신은 어느 쪽을 선택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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