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담사의 앎과 알지 못
상담사는 알지 못함의 긴장을 참아낼 수 있어야 한다.
상담사가 알지 못함의 긴장을 참아낼 수 있다면, 즉 상담사로서의 무지하고 무능하다는 느낌을 견뎌낼 수 있다면 내담자와의 관계에서 의미 있는 것이 나타날 때까지 기꺼이 기다릴 수 있게 된다.
출처: 『환자에게서 배우기』
나는 그러했는가…. 번뜩임과 이어져 오는 자책이 이 문장에서 나를 멈추게 하였다.
알지 못함의 긴장은 생각보다 견디기 힘든 압력이다. 나를 찾아온 내담자는 나를 통해 답을 찾을 수 있을 거란 기대로 온다. 그 기대를 알고 느끼기에 내 앞에 있는 내담자에 대해 알지 못한다는 생각이 들면 불안하고 초조해진다. 그리고 무엇인가를 알아야 한다는 압박이 나를 조여 온다. 이런 불안과 압박으로부터 나를 보호하고자 하는 지극히 인간적인 방어적 태도는 내담자를 알고 이해하고 있다는 환상으로 도피해 버린다.
내담자를 알지 못한다는 것은 무지하고 능력 없는 상담사로 경험된다. 이 경험은 꽤 불쾌하고 때로는 고통스럽기에 그 순간 아주 손쉬운 방법으로 도피를 선택하게 된다. 도피임을 알기에 빠지지 않으려고 애를 쓰지만, 매번 성공하지는 못한다. 성공하지 못한 나에게 실망하고 자책하게 되면 또 다른 도피처를 찾는다.
이런 나에게 비온(Bion) 선생님의 격려가 따뜻한 위로가 되었다.
비온은 분석가에게 "두 가지 시각(binocular vision)"을 가지고, 아는 것과 알지 못하는 것을 결합시켜 바라보라고 격려한다(Bion 1974:63-4). 비온은 앎과 알지 못함 사이에 창조적인 긴장이 있다고 하였다.
출처: 『환자에게서 배우기』
상담사들이 많이 하는 실수 중에 내담자를 섣부르게 안다고 단정 짓는 것이다(나 또한 그렇다). 상담사를 찾아온 내담자의 주제가 이전에 만났던 내담자들과 비슷해서, 내담자의 경험이 상담사의 경험과 비슷해서, 내담자가 말하는 증상이 상담사가 사용하는 이론과 잘 부합해서 등의 나름의 근거라 안다고 단정 짓는다.
상담사가 내담자를 잘 파악하더라도 다른 면에서는 내담자를 알지 못하고 있다는 걸 잊지 말아야 내담자에게 집중해서 경청을 할 수 있으며 공감을 위한 노력을 하게 된다. 상담사는 알고 있다는 첫인상을 넘어서 알지 못한다는 느낌을 유지하는 것은 중요하다. 이것은 상담사가 내담자와의 관계에서 의미 있는 것이 나타날 때까지 기꺼이 기다릴 수 있게 하고 내담자에게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는 기회를 갖게 하는 것이다.
⁜ 비온 [ Wilfred Ruprecht Bion ](1897~ 1979) : 영국의 정신분석학자
참고도서: 『환자에게서 배우기』(패트릭.J.케이스먼트, 한국심리치료연구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