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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발견하는 상담사 Jan 12. 2024

무엇이 된다는 것(becoming)


직업이 상담사이다 보니 상담과 관련된 고민이 나를 가장 많이 지배한다. 아이들도 어느 정도 크고 남편과 나도 관계 줄다리기는 진작에 놓아버렸으니 나에게 가장 큰 비중은 일이 되었다. 상담은 직업을 넘어서 ‘나’이다. 상담사로서의 성장은 나라는 인간의 성장과 같다. 그래서 상담사에게 필요한 모든 것이 나를 위한 것이라 생각하고 그 지난한 과정을 잘 참아내고 있는 거 같다. 그 지난한 과정 중에 하나가 어려운 책 읽기다.  

    

상담과 관련된 똑똑한 분들이 쓴 책은 그리 똑똑하지 않은 내가 읽어내기는 버겁다 못해 고통스럽기까지 하다. 미치게 이해하고 싶은데 내 뜻대로 되지 않을 때가 점점 많아진다. 이제는 한 번에 이해하는 걸 포기하고 애초 여러분 읽어야 한다는 각오로 책을 펴긴 하지만 나이가 들수록 익숙해지지 않는 좌절감은 매번 찾아온다.    

  

예전에 일독했던 책임을 책에 쳐진 밑줄로 확인할 수 있지만 너무나 생소한 내용에 이젠 헛웃음이 난다. 마음을 다잡고 꼼꼼히 책을 읽다가 예전에 읽었던 기억이 떠올라 잠시 기쁘기도 했다. 기쁨도 잠시, 상담사로서 내가 한 실수들과 놓친 것들이 떠올라 당황스럽고 얼굴이 화끈거린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기도 한다. 그러면서 마음이 급해져 속도를 내지만 속도를 낼수록 이해가 안 되는 책이니 도리 없이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읽는다. 어릴 적 소설책을 빠르게 읽던 습관이 지금은 독이 되는 셈이다. 다시 습관을 들려다 보니 처음 습관의 중요성을 몸소 깨닫는다.      


치료자는 치료자로 기능하는데 충분한 거리를 유지하면서 환자가 자신에게 감정적인 영향을 준다고 느낄 수 있을 만큼 충분히 가까이 있을 수 있는 법을 배워야 한다.    
출처: 『환자에게서 배우기』      


이 글에서 숨이 잠시 막혔다. 모르는 내용이 아님에도 너무나 쉽게 책 읽는 습관대로 빠르게 나아가는 소통방식이 머릿속을 빠르게 지나가면서 당황스러움에 숨이 잠시 멈춰진다.      


상담사가 상담 시간에 균형 있는 입장을 취해야 한다는 건 이 책뿐만이 아니라 수많은 책과 가르침에서 보고 들었던 것이었다. 상담사가 균형 있는 입장을 놓치지 않고 유지하기란 쉽지 않다. 쉽지 않지만 놓치지 않고 유지하려고 애써야 하는 이유는 그만큼 중요하기 때문이다. 상담사가 내담자에게 진실로 공감하고 그 경험이 내담자가 자신을 발견하고 통찰하는 시간과 공간을 제공할 수 있는 자세이자 방법이기 때문이다. 그동안 내가 해온 것들에 대한 후회와 자책을 하면서 읽다가 정신분석가 비온(Bion) 선생님의 말씀이 나에게 위로가 되었다. 

    

비온은 "무엇이 된다는 것(becoming)"은 시작해서, 계속되고, 결코 완성되지 않는 과정임을 강조했다. 우리는 항상 되어 가는 상태에 있어야 할 것이다(Bion 1975:26). 

치료자가 이러한 "되어 가기"를 그만두거나 자신이 "도달했다"라고 상상하는 경우가 없기를 바란다.
출처: 『환자에게서 배우기』     


그저 되어 가는 중인 내가 도달하지 못하고 실수하고 놓치는 건 어쩌면 당연하단 말로 들리며 위로가 되었다. 비온 선생님의 의도는 그게 아닐지라도 후회의 늪에서 빠져나와 “되어 가기”를 그만두지 말아야 한다는 결심을 분명히 하게 되니 내 맘대로 해석해도 비온 선생님께서 용서해 주실 것이다.


상담사가 자신이 완성되었다고 여긴다면 비온이 말한 "두 가지 시각(binocular vision)"을 갖지 못한다. 이렇게 되면 상담사는 내가 ‘알고 있다’라는 착각에 빠져 ‘알지 못함’이라는 시각을 갖지 못하고 더는 ‘알려하지 않는’ 실수를 범한다. 상담사가 반드시 해야 할 공감을 위한 자세를 잃어버리게 된다. 책을 통해 나에게 온 두 개의 문장에 안도하고 감사한다. 



커버이미지:freepi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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