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발견하는 상담사 Jan 15. 2024

나는 찾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 가는 것

<나는 찾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 가는 것> 

『오티움』문요한


한 사람으로, 상담사로 나를 찾는 것이 중요한 사명이자 본분이라고 생각해 왔다. 돌이켜보면 나를 알고자 하는 욕망은 아주 어릴 적부터 시작되었던 것 같다. 어릴 적 사람에 대한 호기심이 많았던 아이라고 기억하고 있었다. 그런데 다시 생각해 보니 나에 대한 궁금증의 답을 알고 싶었고 그 답을 외부에서 찾고자 했던 것 같다. 그러한 양태는 나이가 들어서도 크게 바꾸지 않았고 내가 맺는 관계들은 다분히 그러한 목적이 들어가 있었다는 걸 이제야 알게 되었다.   

   

관계가 가까워지면서 상대를 더 잘 알게 되었고 그 경험적 지식을 바탕으로 나를 알아가게 되었다. 그러나 그것만으론 나에 대한 호기심을 만족시키지는 못했다. 그래서 다음에 찾았던 방법이 책이었던 것 같다. 그런 목적에 가장 부합된 책이 소설이었다. 등장인물의 심리가 잘 표현된 책이 특히 나의 흥미를 끌었다. 등장인물의 심리와 그들의 관계 양상, 말과 행동에 대한 소설 속 이야기들은 인간에 대한 호기심을 상당 부분 충족시켜 주었다. 그렇게 읽어나간 소설책의 권수만큼 나를 분석하고 파악하는 자료들은 쌓여갔다. 


그러다 호기심 충족에 대한 갈증이 생기며 에세이에 관심이 가기 시작했다. 에세이는 허구의 인물이 아닌 현재 삶을 살아가고 있는 사람의 이야기였고 나에게는 더 신빙성 있는 자료들이었다. 에세이 중에서도 작가의 심연을 드러내는 글에 더 빠져들고 끌렸다. 흡사 그들과 마주 앉아 깊은 이야기를 나누는 듯한 경험이 좋았다. 지금 생각해 보면 상담실에서 내담자의 이야기를 듣는 것과 비슷한 경험을 그때 이미 하고 있었던 것 같다. 그래서 내가 심리학에 이끌렸던 것 자연스러운 과정이었다는 걸 이 글을 쓰면서 이해하게 되었다.    

  

심리학을 공부하고 상담을 직업으로 갖게 되면서 나보다는 타인을 이해하는 것에 더 집중하였지만 나를 이해하고자 하는 작업을 멈추지는 않았다. 나는 나를 이해하는 건 내가 알지 못하는 나를 찾는 것으로 생각했다. 감춰진, 드러나지 않는 나의 어떤 것을 내가 찾고 발견해내야 한다고 말이다. 그래서 난 나를 관찰하고 탐색하는 걸 멈추지 않았고 타인이 말하는 나를 항상 궁금해했다. 그리고 그 작업에 꽤 정성을 들였다.   

   

그렇게 오랜 시간 정성을 들였던 작업을 멈추게 한 글이 나에게 왔다.


나는 찾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 가는 것


이 글이 그동안 해 왔던 나를 향한 탐색 작업을 멈추어 세웠다. 


‘만들어 간다고? 이게 무슨 말일까?’ 만들 수 있다는 말인지, 만들어야 한다는 말인지, 순간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이 문장은 나를 멈추게 하였다. 그리고 이 문장의 뒤를 읽어나갔다. 책의 후반부로 갈수록 나는 스스로 질문을 하게 되었다. ‘나는 나를 찾으려고 애썼던 이유가 무엇이었나?’ 바로 답이 떠오르지 않았다. 곰곰이 생각해도 마찬가지였다. 책에서는 그 답을 알려주었다. 그리고 충분히 납득이 되었다. 


인간은 행복해지고 싶어 한다. 그저 어떻게 해야 행복해지는 방법을 알지 못할 뿐이다. 어릴 적 마냥 행복했던 시절이 있었다는 걸 잊고 있었다. 어릴 적 뭐 때문에 행복했는지 물어본다면 딱히 대답할 것도 없다. 그냥 그땐 즐겁고 재밌고 기뻤다. 마음먹은 적은 없지만, 그때의 그 달콤함을 다시 경험하고 싶은 건 인간의 본능과도 같은 욕망인 거 같다. 


그 달콤함은 즐겁고, 재밌고, 기쁨에 의한 것이었다. 지금도 내가 즐겁고 재밌고 기뻐할 것이 무엇인지 알고 실행한다면 달콤함을 다시 맛볼 수 있단 말이지 않은가! 그것이 행복에 다다른다는 걸 깨닫게 되었다. 작가는 내 영혼이 진정 기뻐하는 것이 무엇인지 찾아야 한다고 말하였다. 나의 밖에서가 아니라 내 안에서 찾아야 한다는 말이다. 타인을 관찰하고 책을 보고, 심리학을 통해서가 아닌 나를 관찰하고 나에게 묻고 얻어낸 답을 경험하고 체험했어야 했다.

      

나를 잘 안다고 이야기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변화 가능성에 주목하지 않는 이들이다. 이들이 알고 있는 것은 ‘과거의 나’이거나 어느 한 면만 바라본 ‘평면의 나’에 불과하다. 우리는 자기를 공부해야 한다. 자기를 파헤치고, 이해하고, 실험해서 자기를 입체적으로 바라보고 새롭게 재구성해야 한다.
『오티움』문요한

     

이제 나에게 집중해야 하는 이유가 달라졌다. 나에게 집중해야 하는 이유는 내 영혼이 기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기 위해서다. 그걸 알게 된다면 충분히 경험하고 체험해야 한다. 그런 후, 나를 다시 만들고 정의해야 한다. 바로 지금 말이다.      




커버이미지:freepik

작가의 이전글 무엇이 된다는 것(becoming)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