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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발견하는 상담사 Jan 16. 2024

혼자 있지 못하는 무능함, 외로움


상담에 관한 이론 책에 소개된 어떤 부인의 사례이다. 그 부인은 평소에 심각할 정도로 기억을 하지 못하는 문제로 상담실을 방문했다. 부인은 사소한 것이나 중요한 것 모두 기억을 하지 못해 난처한 적이 점점 늘어나자 상담실을 방문했던 것이다. 부인과 상담을 진행하면서 상담사는 부인의 삶의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그리고 부인이 기억을 잘하지 못하는 이유를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부인은 잊지 못해서 기억하지 않는 것이다.> 부인에게는 너무나 고통스러운 사건 경험(양아버지에게 성폭행을 당했다)이 있었다. 부인은 미치도록 잊고 싶었지만 그 사건은 절대 잊히지가 않았다. 부인이 의도하거나 따로 결심한 건 아니지만, 자신을 보호하고자 하는 인간의 자기 보호 기능은  부인이 잊고 싶지만, 잊을 수 없는 기억을 만들지 않기 위해 자신이 경험한 것들을 기억하지 않기로 결정해 버렸다.




이론 책에서 읽었던 이 사례가 불현듯 떠오른 이유는 내가 읽고 있던 책에서 어떤 문장을 읽으면서였다. 


혼자라서 외로웠던 것이 아니라 혼자 있지 못해서 외로웠던 시간들이었다. 

『오티움』, 문요한


우리가 외로움을 경험할 때 내 옆에 아무도 없기 때문에 외로움을 경험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외롭다고 느끼면 누군가를 찾거나 그리워한다. 하지만 그런 사람이 바로 나타날 리 없고, 더욱 깊은 외로움에 빠져드는 경우가 많다. 나 또한 이렇다고 생각하고 믿고 있었다. 그런데 책에서 이 글을 읽고 아하... 라면 짧은 탄식과 함께 다른 생각이 들었다. 



나는 혼자 있는 시간을 견디지 못하였던 거구나. 나는 혼자 있을 때 뭘 해야 하는지 모르고 있었구나... 외롭다는 느낌이 들 때 나는, 사람이 그리운 게 아니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혼자 있는 시간에, 나조차도 나와 함께 있어 주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생각을 못 했다기보단 그럴 능력이 나에겐 없었다. 



이런 나의 무능함을 알지 못했기에 난, 혼자 남겨진 것에 대한 한탄이나 나를 혼자 남겨둔 누군가를 원망했다. 나의 무능력을 알게 되었을 때 경험될 수치심 대신 그보다 덜 아픈 외로운 감정들을 택한 것이다. 잊고 싶지만 잊지 못해 계속 기억해야 하는 고통을 견디기 위해 현재 삶의 경험을 기억하지 않는 걸 선택한 부인처럼 말이다. 자신의 생생한 삶의 느낌을 포기한 거다. 우리는 종종 이런 선택을 하는 것 같다. 



커버이미지:freepik

출처 및 참고자료: 

『오티움』, 문요한, 위즈덤하우스

『단기 역동적 심리치료』, Hanna Levenson 저/정남운.변은희 공역, 학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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