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파트너가 나르시시스트라면 파트너는 내가 스스로 생각하는 길을 막고, 내 삶도 조금씩 빼앗아가더니 어느새 파트너에게 의존하도록 내 일상을 마음대로 결정한다.
이러한 나르시시스트와 반복해서 관계를 시작하고 고통스러운 관계를 유지하는 사람의 주된 생각은 ‘나는 어떻든 다른 사람을 먼저 챙기는 것이 무조건 옳다.’이다. 이들이 이러한 생각을 갖게 된 데는 어릴 시절 가족관계에서 맺었던 경험으로 인한 경우가 많다. 이들은 가족에게 자신이 소중한 존재라는 감정적 경험을 느끼지 못하는 환경에 적응해야 했다. 이들이 가족 안에서 존재 이유를 찾을 수 있는 방법은 자신의 욕구를 포기하고 다른 가족을 우선적으로 챙기는 것이었다.
나르시시스트와 반복적으로 관계를 맺는 사람들은 사랑과 인정에 목말라 있고, 사랑과 인정을 타인을 위해 희생해야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이들은 자신을 챙기지 않고 그럴 생각조차 하지 못한다. 이들이 자신의 가치를 타인을 통해서 얻으려 하기에 자신을 이용하고 착취하는 관계임을 눈치채도 모른척하며 참아낸다. 나르시시스트들의 관계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우선 자신의 이러한 성향을 인정하는 것이 우선 이루어져야 한다.
그렇다면 이들은 나르시시스트와의 관계를 왜 반복하는 걸까? 이들은 안타깝게도 간신히 고통에서 벗어났다가도 다시 되돌아가거나 비슷한 상대를 만난다.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이들의 어린 시절의 경험에서 찾을 수 있다. 이들은 자신의 존재 이유를 찾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자신의 욕구를 포기하고 상대의 욕구를 우선적으로 챙기는 것이라고 굳게 믿는다. 이러한 관계방식은 이들이 알고 있는 유일한 관계방식이며 꽤 효과적인 방식이었다.
어린 시절 이들은 자신에게 사랑과 돌봄을 줄 수 있는 대상(대부분 부모) 앞에서 자신의 욕구를 포기하고 그들의 욕구에 맞추어 순종하면서 관계할 수 있었다. 다른 유형의 대상과 다른 형태의 관계경험이 없었다면 이들이 알고 있는 유일한 관계방식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버림받지 않을 수 있는 유일하고 효과적인 방법이었을 것이다.
어린 시절의 관계방식이 성인이 되어서도 이어지면서 이들은 여전히 상대에게 순종하고 타인의 욕구만을 위해 살아간다. 오랜 시간 동안 이어온 관계방식은 이들에게 정서적 소진을 가져왔고 이제야 무언가 잘 못 되었음을 의심하게 된다. 의심하게 되었다고 확신할 수 있는 건 아니다. 주변을 둘러봐도 자신의 의심을 말할 곳이 없다. 도대체 어디서부터 어떻게 시작해야 하는지 알 수가 없다.
생각보다 이런 고민을 하는 이들이 많다. 안타깝게도 이러한 관계를 오랜 시간 동안 지속하였기에 주변에 사람이 없다. 균형 있는 관계를 맺어본 적이 없기에 자신의 의심과 갈등을 호소하거나 의논할 상대가 없는 것이다. 남아 있는 관계는 이들에게 익숙한 나르시시스트들만 있을 뿐이다. 이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이전과는 다른 관계를 할 수 있는 사람이다.
하지만 이전과 다른 관계를 맺는 방법을 알지 못하기에 쉽지 않다. 이들에게 새로운 관계경험을 함께할 누군가가 없다면 전문가를 만나는 것이 좋은 방법이다. 자신이 겪고 있는 상황과 비슷하다고 느꼈다면 전문가를 만나 새로운 관계경험을 하고 자신에 대한 이해를 해 나가며 앞으로의 삶의 변화를 시작하기를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