억압과 두려움에 맞서는
오랫동안 자신의 감정을 억압하는 방법으로 고통을 다루었던 사람들은 억압하는 것이 더는 소용없게 되었을 때 힘들어진다. 자신의 감정이 솟구치는 것을 통제할 수 없게 되는 경험이 이들에게는 당황스러움과 함께 커다란 벽 앞에 서 있는 경험을 하게 된다.
자신의 감정을 억압함으로써 감정이 주는 정보를 무시해 왔던 건, 그들에게는 이제까지 삶을 살아가는 효과적인 방법이었다. 불합리한 상황이나 자신이 공격받는 상황에서 일어나는 분노는 문제가 생겼고 이걸 해결해야 한다는 걸 빠르게 알려준다. 하지만 감정을 억압해 왔던 사람은 분노를 느끼더라도 문제를 해결할 수 없는 상황에 놓여 있었던 적이 더 많았다. 이들에게는 분노의 감정을 다룰 기회가 허용되지 않았던 것이다.
이들도 분노에 맞는 대응을 해봤던 적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대응이 문제가 해결되기보단 더 큰 문제가 얹혔다면, 분노의 감정이 느껴지는 건 이들에게 더 큰 문제가 생긴다는 신호이다. 이들에게 분노는 표현도 대응도 해서는 안 되는 거였고, 그러기 위해서는 분노라는 감정을 느끼지 않도록 하는 게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선택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분노는 밀어내고 무시하는 힘에 밀려 잠시 웅크리고 있었을 뿐이다. 이러한 분노들이 차곡차곡 쌓여 분노의 몸집이 커져 버리고, 밀어내고 무시했던 힘보다 더 커지는 순간이 오게 된다. 이전까지 자신의 감정을 잘 통제할 수 있다고 여겼던 사람들이 더는 그러지 못한다고 느끼는 순간이다. “제가 제 감정을 조절할 수가 없어요.”라는 이들의 호소는 갑작스러운 자신의 변화를 이해할 수 없어 괴로움이 배어 있다. 그리고 알 수 없는 두려움이 이들을 괴롭힌다.
감정을 억압해 왔던 이유는 감정을 느끼고 그대로 표현했을 때 더 큰 문제가 생겼던 경험 때문이었다. 그 경험은, 느껴지는 감정보다 더 고통스러운 것이다. 아이의 생존은 철저하게 부모의 보호와 돌봄에 의해 정해진다. 때문에 인간 아이는 부모(양육자)가 자신을 보호하고 돌볼 것이라는 증거로 사랑을 확인해야 한다. 아이가 자신에게 본능적으로 느껴졌던 감정을 드러냈을 때, 자신의 생존권을 가진 부모의 반응이 사랑을 잃을 수도 있다는 신호라면, 아이는 공포에 휩싸인다. 부모의 사랑을 잃게 된 아이는 버려질 수 있다는 두려움과 함께 죽음을 예측한다.
지금은 그때의 어린 내가 아닐지라도 해결되지 않았던 두려움은 어린 내가 느꼈던 크기대로 남아있다. 감정을 표현하는 것은 부모의 사랑을 잃고, 버려지고, 죽을 수도 있다는 자동적 사고가 그대로 재현되는 것이다. 이러한 자동적 사고를 알게 되고, 이해하였다 해도 모두가 감정을 다루는 방식으로 드러내고 표현하길 원하는 건 아니다. 원치 않는다는 표현보다는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어 표현했을 때 다른 사람들의 보일 반응이 걱정되고 두렵기에 거부한다.
이들은 자신의 감정을 표현했을 때 다른 사람들에게 미칠 영향과 그들의 반응이 부정적일 거라 확신한다. 이러한 확신 앞에 감정을 표현하는 모험을 하고 싶지 않은 건 당연한 일인 것이다. 이들에게는 현재 겪는 감정의 어려움을 다루는 것에서 시작하는 게 오히려 쉬울 것이다. 그러기 위해 우선은 자신이 조절하지 못하는 감정을 정확히 파악해야 한다.
예를 들어 아이에게 화낼 일이 아닌데 화를 내고 있다면, 화 뒤에 숨겨진 감정이 무엇인지 파악해야 한다. 화 뒤에 숨겨진 감정이 불안, 두려움, 슬픔임을 발견하게 될 수도 있다. 아이에게 화를 낼 때 내 감정이 화가 아니라 불안, 두려움, 슬픔임을 알게 된다면 놀랄 수 도 있다. 그러나 화라고 여겼던 것이 아님을 알게 된다면 다른 반응을 할 수 있을 것이다. 무엇을 할지는 모르지만, 적어도 아이에게 화를 내지 않을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