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대형 쇼핑몰을 가족과 함께 갔다. 화장실에 간 아들을 기다리면서 남편과 함께 앉아 있는데 4,5살 정도의 남매가 장난을 치면서 뛰어 오는 모습이 보였다. 동생인 여자 아이가 오빠를 밀고 잡아당기며 장난을 치고 있었다. 웃으면 몇 번을 받아주다가 오빠로 보이는 아이가(키가 조금 더 컸다) 뿌리치며 여자 아이를 밀치었다. 분명 두 아이의 얼굴은 웃고 있었다. 오빠의 뿌리침에 화가 났는지 속상했는지 모르지만, 여자 아이가 인상을 찌푸리더니 울음소리를 내며 뒤따라오던 엄마에게 갔다. 내가 보기엔 진짜 울음이 아닌, 엄마에게 보여주기 위한 울음임이 분명했기에 귀여움에 미소가 지어졌다.
그런데 뒤따라오던 엄마가 여동생이 오빠가 뭐라 뭐라 말하자(아이 소리는 잘 들리지 않았다), 얼굴이 굳어지며 오빠에게 "너 얘기 때리지 말라고 했지!"라고 말하는 소리가 나한테까지 들렸다. 오빠는 억울한 표정으로 뭐라고 변명을 하는 듯했는데 잘 들리지 않았지만, 아마 동생이 자기한테 먼저 한 일을 말했을 것 같다. 큰 아이의 말에도 엄마는 비슷한 표정으로 비슷한 말을 다시 하였다. 그 소리에 큰 아이는 입을 다물고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잠시 후 엄마가 두 아이 옆에 서서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화해해!"라고 말하는 소리가 들렸다. 아이들이 쭈뼛거리며 가만히 있자, "둘이 안아, 뽀뽀해, 사랑해!"라고 딱딱하게 지시하는 소리가 들여왔다. 엄마 말에 아이들은 군소리 없이 따라 하는 모습이었다. 그런데 아이들 얼굴은 굳어 있고, 시선은 아래로 향한 채 기계식으로 따르는 모습에 탄식이 나왔다. 아이들이 엄마가 지시한 행동을 다 하자 엄마는 돌아서서 가던 길을 가고 두 아이가 따라가는 모습을 나는 계속 눈으로 좇았다.
옆에 있는 남편은 핸드폰 보느라 보지 못한 것 같아, 내가 본 장면을 이야기해 주면서 한 마디 했다. "아니 저 엄마는 남편하고 싸웠는데 시어머니가 옆에 서서 화해해, 안아, 뽀뽀해, 사랑해라고 말하면 그게 되냐?" 철저히 아이들 입장에 이입돼서 한 말이다.
지금 생각해 보면 고만고만한 어린아이들과 큰 쇼핑몰에 혼자 온 것만으로도 대단하고 고되겠구나 싶다. 기억해 보니 고단함이 엄마 얼굴에 고스란히 드러났던 것 같다. 내 아이들이 저만할 때 난 아이들을 데리고(참고로 아들 둘이다) 쇼핑몰을 혼자 나오는 건 감히 생각하지 않았었다. 엄마 입장이 십분 이해된다. 그 엄마도 알고 있었을 것이다. 아이들에게 이런 화해가 별 의미 없는 걸 말이다. 하지만 공공장소에서 빨리 정리하고 하던 일정을 해 내려면 가장 좋은 방법보다는 가장 빨리 끝나는 방법을 선택하게 마련이다.
그래도 좀 여유가 있고 여력이 된다면 아이들이 싸울 때 억지로 화해시키는 건 하지 말았을 면 좋겠다. 아이들이 나중에 싸우고 나서 화해하는 방법을 몰라 난처해지는 경우가 생길 수 있다. 형제가 아니어도 누군가와 갈등 상황이 생기면 그에 맞는 적절한 대처방법을 사용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갈등 상황을 적절한 방법으로 해결하는 경험을 통해 배워야 한다.
어린 남매의 쇼핑몰 사건에서는 엄마가 처음부터 보지 않았기 때문에 앞뒤 사정을 알기가 어려웠다. 어느 정도 자기표현을 할 수 있는 아이들이라면 간단하게라고 각자의 입장을 들어주는 것이 좋다. 그런 후에 다치거나, 공공장소에서 해서 안 되는 행동이나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는 것이 아니면, 주의를 주고 넘어가는 것이 좋다.
위의 어린 남매들은 내가 보기엔 그냥 노는 거였다. 동생이 잠깐 기분이 나빠 엄마에게 달려갔을 뿐이다. 아마 평소에 동생이 엄마에게 이르면 엄마가 자기편을 들어줬던 경험이 있었을 거다. 엄마가 오빠를 혼내면 동생은 이겼다는 생각에 기분이 좋았던 경험이 있었을 수도 있다. 이러한 경험은 동생이 별일 아닌 일로 자꾸 엄마에게 이르는 습관을 만들게 되고 결과적으로 엄마는 일일이 남매의 사건에 개입해야 하니 더 지치고 힘들어진다.
지금은 어려서 아이들의 싸움에 개입하고 중재하는 것이 큰 힘이 들지 않지만, 아이들이 더 크게 되고 그 횟수나 기간이 길어진다면 엄마는 양육이 점점 버겁다고 느껴질 것이며 지치게 될 것이다. 웬만한 싸움은 아이들 스스로 해결하고 넘어가도록 놔둘 필요가 있다. 씩씩거리고 다신 안 놀 것처럼 하다가도 이내 웃으며 다시 노는 게 아이들이다.
형제, 자매, 남매 사이의 싸움에 부모는 최소한의 개입만 하면 된다. 물론 개입방법은 자녀들의 특성, 엄마의 특성, 싸움 원인과 상황정도에 따라 다르다. 그래도 아이들이 싸울 때 억지로 하는 화해를 강요하는 건 멈추길 바란다.
커버이미지 사진: Unsplash의Mikael Kristens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