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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지 Jan 25. 2023

작별하지 않는다, 한강

어떤 방식의 독후감

1. 

죽었다고 믿은 것이 불현듯 살아나 내 귓가에 대고 울부짖는 소리는 참으로 섬뜩하다.

떨치지 못한 마음이 섬뜩한 것이고

불현듯 손에 잡힌 미련이 섬뜩한 것이고 

돌아가지 못할 것을 알기에 저지르는 무모가 섬뜩한 것이다. 


죽었다고 믿은 새를, 더 이상 울지 않는 새를,

잘 짜여진 나무로 만든 관과 가벼운 몸체를 꽁꽁 싸맨 헝겊.

다시는 벌어질 일 없을 부리를 감은 흰 무명실.


그렇지만 다음날 들려오는 숲 속으로 부터의 새 울음소리에 나는 또다시 문을 열어 밖을 내다보게 되는 것이다. 


아마.

너는 죽었잖아. 

내가 너를 묻었는데. 어젯밤에.


2.

네 생각을 많이 했어. 

하도 많이 해서 어떤 날엔 꼭 같이 있는 것 같았어. 


우리 프로젝트 말이야. 생각해 보니 내가 제목을 묻지 않았어. / 작별하지 않는다. / 작별인사만 하지 않는 거야, 정말 작별하지 않는 거야? … 완성되지 않는 거야, 작별이? … 미루는 거야, 작별을? 기한 없이?


3. 

여름철 슬픔은 비와 같아 아래로부터 차오르지만 겨울철 슬픔은 눈을 닮아 위에서부터 내려앉는다는 생각을 한다. 겨울날 슬픈 일이 일어나면 여름의 것보다 떨쳐내기가 조금 더 어렵다. 맺혀 흘러내리는 것이 아닌 얼어버리기 때문이라고, 그렇게 생각한다. 내 눈가에 서리가 낀 느낌이다. 조금이라도 따뜻한 곳에 들어가면 금세 녹아 얼굴을 타고 흘러내리는데 그게 마치 눈물 같다.


그러나 그것은 절대로 눈물이 될 수 없으므로. 겨울 한파 속 유난한 슬픔과는 영영 친해질 수 없을 것이다. 


4.

단순히 그때, 그곳에서 태어나 살고 있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시대의 희생자가 되라는 질척한 책무를 떠안는 것은 가혹하다. 이것이 내가 팔십 년의 광주와 사삽 팔 년 제주에서의 일에 유달리 마음 쓰는 이유다.


내가 ‘피해자’가 되지 않은 이유는 그들보다 나은 사람이어서가 아니라 단지 그곳에 없었기 때문이다. 내가 떼죽음 당하지 않은 이유는 그들보다 옳은 사람이어서가 아니라 그 순간, 이 땅에 발 붙이고 숨 쉬지 않았기 때문이다. 


때로 어떤 탄생은 자체만으로 죄가 되어 허무한 끝을 명 받는다. 죄목은 불운이다. 

생존과 죽음이라는 가장 원초적인 갈림길에 작용하는 운은 안타깝게도 잘 눈에 띄지 않는다. 그게 우리가 광주를 욕보이고 제주를 지워낼 수 있는 결정적 원인이리라.


5. 

작가의 전작 <소년이 온다>가 봄에 내리는 여름철 장마라면 <작별하지 않는다>는 한 손으로 훑으면 금세 바스라질 먼지 같은 눈이다. 

한강이 세계를 기억하는 방식은 매번 사무친다. 마음에, 뼈와 살에, 망막에, 뇌의 한 조각에. 기억은 살아남은 자의 몫이고 증명은 그 일로부터의 외부인이 지고 가야 할 운의 대가다.


대체 왜 우릴 죽였어?

왜 하필 나였지?

총구가 향한 죄 많은 몸이 당신은 아니어야만 했던 이유가 대체 뭐냔 말이야.


매일 밤마다 저따위 질문들이 당신을 찾아가라고, 찾아가라고 

보태어 퍼붓는 저주,

를 닮은 선고.


6. 

이 세상의 어떤 죽음은 흰색을 띤다. 덩어리째 엉겨 붙어 내리는 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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