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봐야 아는 아픈 사람 마음

<몸은 기억한다>

by bnnapudding


빈말하는 게 싫어서 위로조차 건네지 못했던 때가 있다. 분노하거나 슬퍼하고 있는 사람에게 어떤 말을 하는 게 최선일까. 시간이 흐르면 괜찮아진다는 말은 책임감이 없어 보이고 당사자보다 더 큰 화를 내는 건 진실성이 없어 보인다. 거창한 위로를 받겠다고 내게 속마음을 털어놓은 게 아니란 걸 알지만, 거짓 반응을 하면 괜히 양심이 찔리는 것이다. 나도 대인관계 때문에 곤란한 적이 있었고 평생 누구에게도 털어놓을 수 없겠다고 판단한 지극히 내밀한 속마음도 있었다. 트라우마 때문에 속이 다 곪아버리고 삶이 완전히 무너져 내릴 수 있다는 걸 우리 대부분 머리로만 알고 있다. <몸은 기억한다>는 트라우마에 시달리고 있는 이들을 집중적으로 조명하면서 개별적인 삶에 대한 이해와 존중을 일깨우고, 트라우마 혹은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에 대한 조심스러운 접근을 제안한다. 이 태도 자체가 독자에게 위로로 다가갈 수 있을 것이다.


인간 삶에 대한 연민과 진정한 이해를 원하는 사람에게는 이 책을 강력하게 추천한다. 상처 없는 인생은 없다. <몸이 기억한다>는 전쟁에서 돌아온 군인, 교통사고 생존자들, 가족 내 성폭력 피해자들, 아동기에 트라우마를 겪은 이들까지 다양한 일화를 소개하고 그들의 뇌에서 어떤 화학적 반응이 일어나는지를 관찰했다. <몸은 기억한다>라는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정서적인 상처와 신체적인 반응은 연결되어 있고 스위치를 끈 것처럼 멍해지거나 패닉 상태에 빠지는 등의 갑작스러운 행동에는 과거의 기억으로부터 촉발되는 분명한 이유가 있다는 것이다. 트라우마 혹은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는 정신에 국한되지 않는다. 더불어 베셀 반 데어 콜크가 만난 여러 환자들의 어딘가 고장 난 듯한 실제 삶의 이야기는 독자들에게 설득력을 불어넣을 것이다. ‘인생은 지금 허위로 흘러가고 있다는 걸 저 스스로 인지하더라도 계속 흘러가네요’라는 말처럼 고통스러운 상처는 자연스럽게 치유되지 않는다.


어떤 관계나 집단에서는 아프다는 것이 약점이 되기도 한다. 특히 정서적인 문제가 원인이 되는 트라우마에 관한 문제에서는 자기 자신도 버팀목이 되지 못한다. 타인에게 증상이 보일 정도면 심리적으로 이미 무너져 내려 ‘자기 자신에게 낯선 이방인이’ 된 상태일 것이다. 마음에 관련된 병은 흔히 형체가 없는 병으로 인식되곤 한다. 피가 나거나 뼈가 부러져 절뚝거리지도 않기 때문에 꾀병이라는 오명을 쓰기도 한다. 트라우마와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의 치료법으로 제시된 방법들의 공통적인 특징은 ‘자기 드러내기’였다. 연극 치료와 안구 운동 민감소실 및 재처리 요법 모두 상처가 된 과거의 사건을 직시하고 입 밖으로 꺼내게 만든다. 사실 나는 이 책에 소개된 여러 치료 방법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 약이나 심리 치료보다도 효과가 좋은 것으로 나타난 방법은 놀라울 정도로 간단했다. 환자가 감춰두었던 과거 장면을 스스로 바라볼 수 있게끔 다리 역할만 되어줘도 그들의 삶에는 빛이 드리우게 된다. 과거를 과거로 둘 수 있게 된다. “히스테리의 각 증상이 그 사건에 대한 기억을 촉발시켜 기억이 명확히 드러나게 하고 그에 수반되는 영향도 나타나도록 할 때, 그리고 환자가 그 사건을 최대한 상세히 설명하고 그 기억으로 나타난 영향을 말로 설명할 수 있게 되면 즉각, 영원히 사라지게 된다는 아주 놀라운 사실을 처음으로 깨달았다.” 트라우마로 고통받고 있는 모든 사람들이 이 사실을 마음에 새길 수 있으면 좋겠다.


과학적인 사실을 단순히 나열만 하는 글은 내게 큰 흥미를 불러오지 못한다. 그 이론들과 나의 삶이 대체 어떻게 연결될 수 있다는 것인지 의문만 커지기 때문이다. <몸은 기억한다>에는 이 책의 기반이 되는 따뜻한 연민과 공감의 시선이 시작부터 끝까지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다. 인간의 삶을 더욱 다채롭고 눈부시게 만들기 위해 쓰인 학문은 우리에게 힘이 되고 때론 치유에 대한 실마리를 제시하곤 한다. ‘그런 병 자체가 없다고’ 덮어놓고 외면하지 말고 먼저 ‘내 속에 있는 다른 나’와 대화를 나누고 타인과 소통을 해야 한다. 삶의 아픔을 가지지 않은 사람은 없기에 우리는 결국 서로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베셀 반 데어 콜크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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