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새터데이 나이트' - 웃음 뒤에 있는 것

by 하이드

개판입니다.


전무후무, 야심찬 새 코미디 쇼의 첫 방송 직전입니다. 과장이 아니라 기껏해야 몇 시간 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그런데도 대본은 현장에서 마구 바뀌고, 리허설은 제대로 진행도 안 됩니다. 출연진은 자기들끼리 치고 받고 난리도 아닙니다. 심지어 이 쇼는 생방송입니다.


이보다 더 정확한 말이 있을까요. 개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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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터데이 나이트 라이브, SNL은 국내에서도 익히 알려져 있는 스케치 코미디 쇼죠. 한국판이 2011년에 시작했으니 벌써 우리나라에서도 제법 긴 역사를 가지게 된 프로그램이 되었습니다.


제이슨 라이트먼 감독의 '새터데이 나이트'는 제목 그대로 이 쇼의 탄생을 다루는 영화입니다. 그 중에서도 첫 방송을 앞두고 있는 1975년 10월 11일 토요일 밤의 몇 시간을 말이죠.


지금은 무려 50년의 역사를 자랑한다지만 첫 방송은 순탄치가 않습니다. 제작자들은 풋내기지, 방송사 사정은 겁나게 복잡하고, 방송 당일인데도 엎어지지 않고 무사히 전파를 타기만 하면 기적처럼 보일 정도입니다.


이게 또 유쾌한 좌충우돌 정도라면 좋을 테지만, 현장 분위기는 살벌하다는 표현이 과하지 않습니다. 누군가에게는 커리어가, 누군가에게는 직장의 위신이 달린 문제니 당연하다면 당연하죠. 이 과정에서 오가는 상황들도 생각 없이 봤다간 좀 당황할 정도로 수위가 꽤 높습니다.


그러니 한편으로 자연스럽게 이런 생각이 들죠. '웃긴 것'을, 토요일 밤 편안히 TV를 보는 사람들을 즐겁게 만들 쇼를 만들자고 모인 사람들인데, 이러다 사람 하나 잡겠네. 이건 코미디잖아?


저는 개인적으로 코미디를 좋아합니다. 재미있는 것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을 보는 것도 좋아하죠. 그런데 이 영화를 보고 나서는 그 아이러니함이 머릿속에 남았습니다. 웃음 뒤에 있었던 '찐텐'의 험악함이요. 웃긴 걸 해보겠다고 모인 사람들이 이런 모습을 보이고 있으니, 이거야말로 코미디라고 해야 될지. 코미디와 공포는 종이 한 장 차이라고 하던가요.


결국 이들의 열망이 이루어져서, 엉망진창인 준비 과정 속에서 무사히 첫 방송을 성공하고, SNL은 전설적인 코미디 쇼가 되었죠. 그러니 좋은 게 좋은 거라고 생각해야 되는 걸까요? 이 아수라장 속에 남아 있던 한 줄기의 순수한 마음이 결국은 통하게 된 거라고?


결과가 좋으면 다 좋다는 말에 대한 생각은 모두가 다를 겁니다. 결과만으로는 부족하며, 과정 역시 좋아야 한다고 믿는 사람도 있겠죠. 하지만 이러한 우여곡절을 거쳐 탄생한 쇼는 전설이 되었고, 지금까지 명맥이 이어져오고 있습니다.


그날 밤의 개판은 잘한 짓이었을까요? 모르는 게 약이었을지도 모르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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