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인중개사 일상) 벽이 울면, 나도 운다

누수의 불확실성과 중개업

※. 개인정보보호를 위해 내용 일부를 각색했습니다.


'30년 이상의 연립은 함부로 손대지 마라'


공인중개사들 사이에 돌아다니는 조언이다. 그 근거는 누수와 중개보수다. 다르게 표현하면 업무가 복잡하고, 리스크는 높은데, 보상은 낮다는 의미다. 보통의 누수도 어려운데, 노후화된 건축물은 경우의 수가 급증한다. 필자가 아는 경우만 해도 방수, 외벽, 새시, 그리고 배관의 크랙 등이다. 나열은 단순하지만, 현장에서 마주한 누수는 막막하다. 배관만 해도 반나절이니까.


이쯤 되면 추측했겠지만, 최근 매매계약을 체결한 연립주택에 누수가 문제였다. 필자는 매수 측이었으며, 안내할 당시만 해도 매도인은 누수의 험악한 흔적에 비해, 이삼 년 전 방수공사로 잡았다고, 현재진행형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이후의 거래과정은 순탄했다. 잔금 전에 수리를 시작하는 등 예외적인 경우가 있었지만 말이다.


그리고 문제가 발생했다. 매도인의 퇴거일 오전, 매수인께서 내부를 확인해 달라며 요청했다. '별 일 있겠거니' 싶었다. 가벼운 마음으로 도착한 내부엔 낯선 아주머니가 계셨다. 윗집 이웃이란다. 이어진 그분의 주장과 워딩은 충격적이었다.


'장마철이나 태풍처럼 비가 많이 오는 날이면 저기서 폭포수가 쏟아진다. 바가지라도 두는 게 좋다. 방수가 문제라면 본인들이 (누수부위와 인접한)화장실을 사용하는데, 누수가 계속해서 발생해야 하는 것 아니냐. 나는 건물 준공 당시부터 살았다. 아래층보다 늦게 입주했는데, 그때에도 해당 부분에 누수가 있었다. 아래층 이웃이 누수를 이유로 위층에 올라왔으나, 당시엔 본인들이 입주하지 않았었다. 즉, 우리 집은 누수와 무관하다. 이 집에 이사 올 때마다 우리 집을 찾는다. 이전에 한 분은 타일 철거 및 누수 확인비용의 부담을 전제로 누수 여부를 확인했다. 그때도 이상이 없었고, 결국 그 분만 헛된 비용을 지불했다. 옥상방수가 유력해 보인다. 내가 총무인데, 거주자들이 장충금을 납부하지 않는 관계로 주기적인 방수를 하지 못하는 중이다.'


구성이나 논리에 빈틈이 없었다. 그렇다고 계약을 파기할 수도 없었다. 잔금 전 수리의 조건으로 중도금을 이체했으며, 거액의 진행이 연쇄적으로 막히기 때문이다. 심혈관 동맥경화가 오는 듯한 아찔함이었다.


매도 측 중개사에게 전화부터 걸었다. '누수는 잡았다고 하지 않으셨어요? 윗집 아주머니께서 저렇게 말씀하시던데요.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그분 또한 돌발변수에 팔짝 뛰었다. '어느 !@#$이 그렇게 말하냐!'며, 본인이 직접 오겠다고 했다. 사무실로 돌아온 필자는 전화를 기다렸다. 오후에 걸려온 전화에선 한결 차분해져 있었다. '!@#$'이 '형님'으로 바뀌어있었을 만큼. 그리고 매도 측 중개사 분께서 형님과 얘기해 보니 옥상 방수문제 유력해 보이며, 형님께서 매수자의 입주 전에 방수를 하겠다고, 누수를 걱정하지 말라고 하셨단다. 명확한 답변은 찾지 못한 채 해당 내용을 얼버무리며 매수인에게 설명했다.


위층 아주머니는 집요했다. 계약대상물의 리모델링 시작일에 아랫집에 또 내려오셨단다. 그리고 필자에게 언급한 내용을 작업자분께 그대로 말씀하셨다고. 주사위가 필자의 손을 떠난 순간이었다. 작업자분 중에 매수인의 관계자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윗집 아주머니의 반복적인 행동에 의구심이 생기기 시작했다.


해당 소식을 접한 매수인의 불안은 극에 달했다. 이제 매도인의 주장은 믿기 힘들고, 힘들게 수리했는데, 벽지가 다시 젖으면 어떻게 할 건지 해결을 촉구했다. 현장은 계속해서 필자를 호출하고 있었다. 이번엔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서 확인했다. 살짝 만져본 흙은 쉽게 부서져 내리고 축축했다. 그럼에도 누수인지 아닌지 확신할 수 없었다. 전문가가 아니니까. 이러한 상황에서 매수인은 전문가의 진행을 원했다.


목전의 불확실성에 스트레스는 극에 달했다. 비용은 얼마인지, 어느 업자를 선택해야 할지, 누수가 진행되고 있는지, 그렇다면 어떻게 할 것인지, 그리고 윗집 아주머니의 주장대로 해결할 수 없는 누수인지 등으로 말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전문가의 선택에선 짐을 덜었다. 누구도 믿기 힘들다는 이유로 매수자가 직접 알아보겠다고 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돌아온 진단 비용의 액수는 삼십만 원이었다. 중개보수가 이십팔만 원인데, 누수의 진단비가 삼십만 원이라...


비용의 부담주체가 모호했다. 매도인 측에 요청했다. 세 가지 이유를 근거로 거절했다. 매매과정에서 금액을 최대한 조율했고, 본인이 보기엔 누수가 잡혔으며, 그리고 진단 과정에서 물리적인 충격으로 누수가 발생할 수도 있지 않느냐는 이유였다. 논리가 탄탄했다...


외로워졌다. 마지막 구제책으로 매수인에게 제안했다. 중개보수를 돌려드릴 테니 그 돈으로 누수를 진단받자고 말이다. 첫 만남부터 사흘에 걸친 안내, 그리고 계약 전의 금액조율까지 여러 장면들이 주마등처럼 흘러가고 있었다...(웃음) 매수자는 미안해하면서도 해당 제안을 승낙했다. 이제는 찾아주지 않길 바라는 마음으로 받았던 금액을 돌려드렸다.

SE-8d84e408-0c4a-40bc-a9cb-e2943b23a1e2.jpg 중개보수가 나갔다가

다음 날 매수인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누수업자의 진단에 입회해 달란다. 속으로 뜨거운 것이 올라왔지만, 마지못해 승낙했다. '배움으로 본전이라도 뽑아야 하지 않겠나'하는 심정과 진범을 알고 싶은 호기심으로 말이다.


누수업자의 진단은 명쾌했다. 100% 윗집 화장실 방수문제란다.

"옥상 방수나 벽면 크랙으로 인한 누수라면, 며칠 전에 비가 왔기에 지금쯤 말라있어야 할 부분이다. 이 정도 축축함이라면 미세한 균열이 원인이다. 구조 등을 고려했을 때 화장실 방수가 명확하다."


이어서 업자분께선 육안으로 누수원인을 확인했기에 진단비는 삼십만 원이 아닌 일십만 원을 받으시겠다고 했다. 알고 보니 배관까지 진단하면 삼십만 원이었다. 귀에 들린 소식에 조심스럽게 매수인에게 말씀드렸다. 돌려드린 중개보수에서 일십만 원을 제외하고 돌려주시면 좋겠다고... 그리고 그날밤 매수인은 누수진단비를 제외하지 않은 중개보수 전액을 이체해 주셨다. '고생 많았다'는 덕담과 함께 말이다.

SE-ceba7693-4079-4ce2-b99b-6dc3ba0186af.jpg 들어왔다

추가적인 얘기로 알아보니 이삼 년 전 방수는 윗집 아주머니 가족이 자체적으로 진행했었단다. 아주머니의 반복적인 방문과 호소(?)의 원인을 짐작할 수 있었다. 다리가 불편한 무직의 매도인은 갈등이 버거워서 그런대로 거주한 것일까. 다행스럽게도(?) 윗집 아주머니는 진단했던 누수업자에게 수리를 의뢰했고, 몇 주가 지난 지금까지 연락이 없다. 그사이 등기필증도 전달해 드렸다.


아찔한 경험이었다. 미국 중개과정의 인스펙션 절차가 필요해 보였다. 공인중개사가 모든 것을 진단하기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중개보수가 몇백만 원이었다면 누수진단비라도 그런대로 제공했을 텐데... 받았던 중개보수를 돌려드릴 때의 심정은 추락하는 전투기에서 비상탈출버튼을 누르는 기분이었다. '생즉사 사즉생'이 아니고. 그리고 운 좋게 문제를 해결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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