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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율아리 Jan 06. 2023

내가 살아온 삶(2)

어느 경계선 지능인의 과거

  대학에 입학하기 위해 문창과 입시를 준비하기도 했었으나 차례로 낙방했다. 수능 역시 입시만 바라보며 손을 놓았기 때문에 성적은 처참했다. 갈 수 있는 대학이 없었다. 대전의 지방대에 입학했으나 반년도 못 견디고 입시의 꿈을 버리지 못해 반수를 했다. 반수까지 하며 호기롭게 준비했으나 결과는 똑같은 낙방이었다.


  성인이 돼 사회 활동을 시작할 즈음 나는 2의 여자였다. 대부분 2주를 못 채웠고 2달이 최대였다. 첫 알바는 대전에서 대학을 다닐 신입생 무렵 시작한 면옥집이었고 그때 당시 과 친구와 같이 알바를 했었는데 하루 만에 잘렸었다. 다음에 얘기를 들어보니 친구는 계속 일해줄 수 없겠느냐는 얘기를 들었다고 했다.


  그 뒤 대학만 다니다 스물세 살 무렵 베이커리 카페에서 베이커리 담당 알바를 했었다. 사람이 늘 바글바글한 교보문고 건물 안 브런치 식빵 카페 였다. 거기서 나는 주말 알바였다. 하는 일은 식빵을 자르고 포장하는 일이었는데 나는 늘 빵을 뭉개어서 포장했고 식빵의 진열 위치와 이름을 외우지 못했다. 처음에는 상냥하고 친절했던 매니저의 태도는 하루 만에 돌변했다. 갈굼이 반복됐고 짜증을 냈으며 욕을 섞어 말하기도 했다. 같이 일하는 직원들 역시 나를 무시했다. 매일 할 일을 메모해갔음에도 나아지지 않았고 늘 울면서 다니다 2주도 채 못하고 관둘 수밖에 없었다.


  사회공포증이 생겨 알바를 할 수 없었다. 한동안 알바를 안 했다. 학교는 대전의 대학교, 방송진흥교육원을 거쳐 방송대에 편입했다. 열심히 학교생활을 했고 2학년 2학기에는 부분 장학금을 받기도 했다. 교수님의 추천으로 ebs의 한 프로그램을 외주제작해주는 미디어 회사에 조기 취업을 했다. 그러나 여기서도 나는 울며 뛰쳐나올 수밖에 없었다. 메인 작가가 스무 살짜리보다도 일을 못한다며 관두길 종용했다. 휴학을 했고 또다시 상처의 긴 껍데기 안에 침잠했다.


  그 뒤 화장품 매장 알바, 대학을 졸업하고 했던 휴대폰 대리점, 샤브샤브집 알바까지 모조리 첫날부터 울거나 일을 못해 같이 일하는 사람들을 악마로 만들었다. 유년시절 집단 따돌림을 당했던 것처럼 성인이 된 나는 역시 갈굼을 당했고 직원들 사이 따돌림을 당했다. 사회의 폭력에 그대로 노출된 채 나는 약자에 대한 사회의 폭력성과 난폭함의 민낯을 보았다. 교과서에서는 알바나 직장 일을 어떻게 해야 잘할 수 있는지 알려주지 않았다. 알바나 직장 내의 폭력도 알려주지 않았다. 학창 시절 학업과 적응이 부진했던 만큼 사회 역시 똑같았다. 다르다면 학교는 그래도 안전한 어른들의 울타리가 있었으나 사회는 안전 울타리 없이, 냉혹한 어른들의 법칙만 있었다.


  나는 알바를 거치며 공포증이 심해졌고 차라리 알바보다는 취업에 눈을 돌렸다. 오랫동안 알바에 대한 공포로 일을 하지 않아 자금이 없었던 난 국비 지원을 신청해 종로의 한  디자인 학원에 다녔다.

  여기서도 나는 적응하지 못했다. 수업은 어떻게든 따라갔지만 자격증은 전부 떨어졌다. 아무도 떨어지지 않은 자격증이었다. 누구에게도 떨어졌다 말할 수 없었다.


  그나마 오래 다닌 곳은 작은 판촉물 회사였고 10개월가량 다녔다. 자격증을 전부 말아먹고 겨우 입사하게 된 회사였다. 낙후되고 비좁은 사무실이었고 사장은 하나였다. 직원도 나 하나뿐이었다. 디자인 업무는 거의 없고 디자인 프로그램도 화려하게 다룰 필요가 없었다. 거기서 나는 그럭저럭 다녔으나 잔실수를 했고 수리가 약해 아주 간단한 비용 견적서도 쓰지 못했다. 십만 원 단위의 숫자는 파악하지 못해 엑셀 파일에 숫자 기입을 못했다. 사장은 종종 나 몰래 채용공고를 냈고 결국 나는 그만두겠다고 말했다. 연금 체불까지 당하는 상황이었다.


  회사를 관두고, 2021년 스물여덟 살 때 1년을 집에서 은둔을 하며 지냈다. 약물 부작용으로 난독증이 심해져 아예 글을 읽을 수 없었고 글을 못 읽는다는 건 일상을 도저히 살 수 없게 했다. 문명의 모든 글에서 배제돼 하루아침에 문맹이 된 것이다. 스트레스와 우울증도 심해져 폐쇄 병동에 입원하기까지 했다.


작년까지의 나의 삶을 정리하자면 어둡고 긴 터널이었다. 유년시절부터 20대의 대부분, 즉 전 생애를 따돌림, 부적응, 갈굼 등으로 정상적이지 못하게 보냈다. 이 세월을 지나오는 동안 여기에 다 적을 수는 없는, 정신적인 문제를 겪었고 차별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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