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심히 했다는 의미

자존감

by 이윤슬

어렸을 때부터 자존감이 많이 낮았습니다. 공부면 공부, 운동이면 운동 주변에서는 뭐든 잘한다고 칭찬해 주셨는데 (이상하게도) 저는, 그럴수록 불안해졌습니다.


나는 아무것도 아닌데,
언젠가는 이런 모습을 들켜버리는 것은 아닐까


똑똑한 줄 알았는데, 사실은 별거 없는 제 모습을 알면 실망하고 떠나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에 항상 쫓기듯 공부하고 살았던 것 같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게 뭐라고 아등바등 노력했을까 싶습니다. 공부 못한다고 실망할 사람도 없고, 그런 사람들이라면 제대로 된 친구가 아니었겠지요. 하지만 그 당시에는 똑똑하지 못한 저는 가치가 없는 것 같아서 항상 불안했습니다. 스스로 질릴 정도로 저는 이런 제가 참 싫었습니다.




당신은 제가 본 누구보다도 자존감이 높았습니다.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한 확신도, 그걸 실현시킬 능력도 가지고 있는 당신은 무엇을 하든 당당해 보였습니다. '스스로를 믿으며 산다는 건 저런 거구나' 하고 생각했습니다. 그게 참 부러웠습니다. 멋있다고, 저렇게 되고 싶다고 생각했습니다.


공부를 잘하면 할수록, 성적을 잘 받으면 받을수록 걱정만 늘어났습니다. 그냥 속 편하게 잘한다고 스스로 인정하면 좋을 텐데 그게 참 안 됐습니다. 주변에 이런 얘기를 하면 대부분은 그래도 지금은 공부를 잘하고 있지 않냐고, 머리가 좋은데 무슨 걱정이냐고 말해주었습니다. 혹자는 기만하는 거라고 우스갯소리로 말하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어느 순간부터 남들이 보기에 쓸데없는 고민은 말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저, 너무 힘들어요.


학년이 올라갈수록 성적에 대한 스트레스는 커졌습니다. 성적뿐만 아니라 학교 생활자체도. 분명 눈에 보이는 결과들은 잘해나가고 있다고 말해주는데, 스스로는 잘하고 있는지, 원하는 일은 할 수 있을지, 제대로 취업은 할 수 있는지, 현실적인 고민들이 늘어났습니다. 이 불안과 답답함을 누군가는 알아주었으면 했습니다. 동시에 아무도 몰랐으면 했습니다. 저의 불안과는 별개로 다른 사람들의 이미지 속 '뭐든 차분히 잘 해내는 사람' 으로 남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역시 참는 것도 끝이 있었겠죠. 스트레스가 한계에 다다른 어느 날. 결국 저는 또 누군가에게는 쓸데없을 얘기를 했습니다. 앞으로가 너무 걱정되고 불안하다고. 그래서 힘들다고.


그건 그만큼 열심히 했다는 뜻이에요.

길고도 긴, 하소연에 가까운 저의 말을 듣고 난 후 해준 그 말. 실패하는 게 무서운 건, 좋은 점수를 받지 못할까 두려운 건, 그만큼 지금까지 열심히 했기 때문이라고. 열심히 했으니까 당연히 그만큼 실패할까 봐 걱정도 되는 거라고 "막말로, 지금 같은 시기에 놀고 있는 애들은 점수나, 취업걱정 별로 안 할 걸요?" 간결하고 확신에 찬 대답(어쩌면 고심했을지도 모르지만)을 듣고 꽤 멍했졌었습니다. '사람마다 다르지 않을까? 어떻게 저렇게 확신을 가지고 말 할 수 있지? 근데 열심히 했으면 걱정이 안 돼야하는 거 아닌가? ' 여전히 오만가지 생각이 들었지만 계속 얘기를 하다 보니 이상하게 설득이 되었던 것 같습니다. 그 당시 제가 생각하는 가장 현명한 사람이 그렇게 말해주니까 뭔가 납득하게 되었던 것 같습니다.


당신은 저의 큰 일을 별거 아닌 일로 만들어 버리는 재주가 있습니다. 덕분일까요, 성인이 된 저는 예전과 비교하면 꽤 자존감이 높아진 것 같습니다. (물론 사회생활을 한 것도 큰 몫을 했겠지만요.) 학생 때의 제가 본다면 감격할지도 모르겠습니다.


물론 여전히 걱정도 꽤 많이 합니다. 가끔은 스스로가 못 미덥기도 하고요. 오늘도 일하면서 실수를 몇 번 했는데, 아직까지도 신경이 쓰이는 걸 보면, 역시 당신을 따라가기엔 아직 갈 길이 먼 것 같습니다. 언제쯤이면 자연스럽게 걱정과 긴장을 원동력으로 바꾸게 될까요? 아무리 생각해도 당신의 멘탈은 강철로 만들어진 것 같아요(웃음)




새로 시작한 일에 잘 적응할 수 있을지 걱정됩니다. 이제는 마냥 어리다는 핑계를 댈 수 없는 나이니까요. 그럼에도, 아마 저는 잘할 겁니다. 언제나 그래왔으니까요. 그렇게 걱정하고, 힘들어하고, 상처받으면서도 결국 그만큼 노력해서 일도 사람들이랑도 잘 적응했으니까요. 지금 이렇게 불안해도 몇 개월 지난 뒤에는 금세 적응해서 일하기 싫다고 투덜대고 있을 겁니다. 분명 그럴 거예요. 뭐, 사실 그러지 못해도 상관없겠죠. 모두를 만족시킬 수는 없고, 경험해보니 처음부터 일 잘하는 사람은.. 음.. 힘든 것 같아요. 그러니까 이건, 전략적 불완전함입니다. 아시죠?


사랑합니다. 오늘도 당신이 보고 싶습니다.






자존감이 낮아져 있어도 괜찮다. 그 덕에 더 노력할 수 있었고, 떄론 무기력에 빠져 쉬는 시간도 가질 수 있었다. 그저 "괜찮다. 그동안 수고했오"라고 얘기해주면 된다.

윤횽균 <자존감 수업>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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