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하다 잠들고, 핏줄 터지고, 그래도 멈추지 않았다 — 삼만 배의 7일
절을 하면 잡념이 사라질 줄 알았다.
완전히 틀렸다.
몸은 절을 하고 있는데, 머릿속은 tv 드라마 16부작이 동시에 틀어지는 것 같았다. 어릴 적 기억, 엄마 얼굴, 친구들과의 싸움, 심지어 고2 때 친구들이랑 몰래 봤던 포르노 장면까지 튀어나왔다. 부처님 명호를 부르는 입과, 완전히 딴 세상을 달리는 머릿속이 따로 놀았다.
이게 수행이 아니라 내 죄업 총집 편 상영회인가……
그래도 첫날을 무사히 넘겼다. 몇 배를 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포기하지 않았다는 것, 그것 하나는 확실하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인데, 당시 청암사 승가대학 스님들 사이에서 나는 꽤 흥미로운 구경거리였다고 한다. 몇몇 스님들은 내가 삼만 배를 못 채우고 야반도주할 거라고 내기를 하셨다는 말을 듣고, 나는 배꼽을 잡았다. 실제로 그전에도 행자들이 밤중에 짐 싸서 조용히 사라진 적이 있었다고 했다. 인사하고 가기엔 창피하고 미안해서였을 거라고들 하셨다.
그 말을 듣고 솔직히 속으로 이랬다.
아니, 갈 거면 제대로 인사하고 가면 되잖아. 왜 도망을 가.
… 그때는 몰랐다. 그 '염치'라는 게 얼마나 무거운 건지.
첫날밤, 잠들려는데 무릎부터 시작된 통증이 온몸으로 퍼졌다. 하루 종일 절만 했건만 아직 3천 배도 못 채웠다는 현실이, 통증보다 더 아팠다.
그날 밤 눈물이 났다.
현실 도피조차 쉬운 게 아니었다.
너, 진짜 스님이 되고 싶은 거 맞아?
그 질문이 자꾸 돌아왔다.
이튿날도 똑같이 밥 먹고 절하고, 화장실 다녀와서 또 절했다. 그런데 복도에서 마주치는 스님들이 슬쩍 초코파이를 쥐여 주셨다. "당 떨어질 테니 먹어." 말은 짧았지만, 그 마음이 느껴졌다. 속으로 나를 응원하고 계신 거였다.
그래, 나도 저런 사람이 되고 싶었던 거야. 도망이 아니었어.
다시 한번 마음을 다잡았다.
점심을 먹고 다시 법당에 들어가 절을 이어갔다. 그런데 이틀째 지친 몸이 배신을 했다. 절하며 엎드리는 그 자세 그대로, 나도 모르게 잠에 빠져들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고작 이틀 만에 벌써 무너진 게냐! 너 눈엔 중 된다는 게 장난이냐, 정신 차려!"
번개 같은 호통에 나는 방석에서 개구리처럼 튀어 올랐다. 옆에서 기도하던 스님이 온 법당이 떠나가도록 소리치셨다.
눈물이 찔끔 나오려다, 그 순간 내 안 어딘가에서 뭔가가 확 치솟았다.
아씨… 내가 못 할 것 같어? 어디 두고 봐. 나 삼만 배 꼭 해 불 것이여~
전라도 깡다구가 발동했다. 그 호통이 기름이 됐다. 그 이후로 절의 속도가 빨라졌다.
3일째 되던 날, 두 다리에 실핏줄이 터지기 시작했다.
19년 인생에서 운동회 말고는 제대로 된 운동을 해본 적이 없는 몸이, 하루 10시간씩 절을 버텨낼 리 없었다. 다리가 아작 났다는 소문이 절 안에 빠르게 퍼졌고, 1학년 스님들이 걱정해 주셨다. 그날 밤, 종무소 스님이 맨소래담, 진통제, 파스를 한가득 들고 오셨다.
"큰스님이 가져다 드리라 하셨습니다."
나는 그 말에 그만 뭉클해졌다.
스스로 발로 걸어 들어와 테스트를 받는 중에, 다리 핏줄 좀 터졌다고 큰스님이 직접 챙겨 주시다니. 돌이켜보면 그때 그 이쁨을 받은 사람은 나 하나뿐이었을 것이다. 어딜 가도 이러는 게 나라니깐. (이건 자랑이다.)
4일, 5일이 지나도 멈추지 않았다. 핏줄이 터지든 근육이 비명을 지르든, 불명경 책장은 조금씩 넘어갔다. 책의 절반이 넘어가던 날, 혼자 속으로 외쳤다.
여기까지 왔는데 포기하면 진짜 바보다. 끝을 한번 봐보자.
6일째, 강사 스님이 법당에 들어오셔서 기도 스님에게 조용히 물으셨다.
"저 아이, 잘하고 있느냐?"
기도 스님의 대답이 들렸다.
"네, 스님. 쉬지 않고 아주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엥? 나를 칭찬하네. 중간에 꾀도 좀 부렸는데……
강사 스님이 흐뭇한 표정으로 법당을 나가셨다. 나는 아무렇지 않은 척 절을 이어갔지만, 속은 이미 울컥하고 있었다.
드디어 7일째.
마지막 몇 장을 앞두고, 나는 마라톤 결승선을 앞둔 사람처럼 감각도 없는 두 다리를 끌고 끝까지 달렸다.
그리고 마지막 한 배.
삼만 배.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한없이 흘렀다.
그런데 눈물이 채 마르기도 전에, 내 머릿속에는 또 그 질문이 돌아왔다.
(삼만 배는 끝냈어. 근데… 너 진짜 스님 되고 싶은 거 맞아? 아직 고기도 먹고 싶고, 남자랑 뽀뽀 한 번도 못 해봤잖아. 음악만 나오면 몸부터 흔들리잖아. 그래도 이거 다 포기하고 스님 할 수 있겠어?)
그런데 이상했다. 해냈다는 기쁨보다, 어딘가 모를 먹먹함이 먼저 밀려왔다. 마치 이제 막 첫 장을 넘긴 줄 알았는데, 어느새 책 중간쯤에 와버린 사람처럼. 돌아갈 페이지가 점점 멀어지는 느낌.
이제 정말… 엄마를 못 보는 건가..................
그 생각이 드는 순간, 눈물이 또 흘렀다. 삼만 배를 이겨낸 다리보다, 그 한 문장이 더 무거웠다.
포기를 안 하는 건지, 못 하는 건지도 모르면서....................
다음 편에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