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배(三拜)와 삼만배(三萬拜) 사이
발 냄새나면 어떡하지……
새벽 5시에 집을 나와 하루 종일 버스를 타고 기어이 이 절까지 찾아온 19살 가출 소녀의 첫 번째 고민이 바로 그거였다. 삶의 의미도, 수행의 각오도 아니고. 발 냄새.
방 안에는 두 분의 노스님이 앉아 계셨다. 한 분은 자그마한 체구에 눈빛이 곧고 단아하셨고, 또 한 분은 풍채가 좋고 카리스마가 넘치면서도 인상은 믿기지 않을 만큼 포근하셨다. 두 분이 동시에 나를 바라보셨다.
나는 황급히 삼배를 올리고 자리에 앉았다.
자그마한 스님이 먼저 입을 여셨다.
"그래, 몇 살이냐? 그리고 왜 중이 되려 하느냐?"
"열아홉 살입니다. 어릴 때부터 꿈이 스님이었고요. 어느 날 화장실에 앉아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내 인생이 너무 허무하다. 그래서 이 생에는 중생이 아닌 수행자로 한번 살아보고 싶었습니다."
옆에 계시던 스님이 물으셨다.
"부모님은 아시니? 어디서 왔어?"
"전라남도 순천에서 왔습니다. 부모님은 모르십니다. 편지 한 장 써놓고 왔습니다."
두 분의 눈이 동그래졌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제발, 제발 집에 가라고는 하지 마세요. 차비도 없다고요……
다행히도 자그마한 스님이 천천히 입을 여셨다.
"그래, 여기까지 힘들게 왔으니 한번 해봐라. 허나 중이 된다는 건 뼈를 깎고 살을 에는 고통 속에서 자기 자신을 찾아가는 일이다. 아무나 와서 머리 깎고 사는 곳이 아니야. 그러니 일주일을 줄 테니, 그 안에 삼만 배를 끝내거라. 그걸 통과해야만 행자 생활을 시작할 수 있다."
나는 당돌하게도 한 번 더 확인했다.
"그래. 삼만 배."
스님은 백과사전보다 두꺼운 책 한 권을 내미셨다. 『불명경(佛名經)』— 2만 5천에서 3만에 이르는 부처님의 명호가 빼곡히 적힌 책이었다.
"아침 먹고 절하고, 점심 먹고 절하고, 저녁 먹고 절해라. 하다가 마음이 바뀌면 언제든 집에 가도 좋다."
나중에 알고 보니, 내가 찾아간 곳은 우리나라 3손가락 안에 드는 비구니 승가대학 사찰이었다.
그런 곳에 머리 노랗게 물들인 열아홉 살이 아무런 연락도 없이 찾아와 "스님 되러 왔습니다" 했으니… 지금 생각하면 얼굴이 화끈거린다. 매번 글을 쓰면서 다시 한번 느끼는 거지만, 나는 진짜로 미친년이었다. (이건 욕이 아니라 진심 어린 자기반성이다.)
종무소 스님을 따라 공양간으로 갔더니, 행자 두 분이 이미 저녁을 차려놓고 기다리고 계셨다. 늦은 시간임에도 큰스님이 미리 연락을 해두신 거였다. 나 때문에 쉬지도 못하고 나오신 분들께 미안한 마음이 들었지만, 솔직히 말하면 그 마음은 딱 한 숟갈 뜨는 순간 사라졌다.
이 쌀밥이… 왜 이렇게 맛있지.
나물도 다 맛있었고, 무엇보다 김치. 절에서는 젓갈을 일절 쓰지 않는다. 그런데 어떻게 젓갈도 없는 김치가 이토록 시원하고 감칠맛이 날 수 있는지. 밥 한 공기를 눈 깜짝할 새 비워버렸다.
객실로 안내받았다. 작은 화장실과 세면대가 달린 방이었다. 종무소 스님이 돌아가시며 말씀하셨다.
"내일 아침 3시 기상입니다. 예불 때 법당으로 나오세요."
나는 대충 씻고 그대로 바닥에 쓰러졌다. 너무 길고 너무 피곤한 하루였다.
목탁 소리와 북소리에 눈을 떴다. 밖에서 종무소 스님의 조용한 목소리가 들렸다.
"학생, 아침 예불 가게 일어나세요."
대웅전 법당 문을 열었을 때, 나는 그만 숨이 멎을 뻔했다. 120명 가까이 되는 스님들이 한 줄로 차례차례 법당에 들어서며 소리 하나 없이 정렬해 앉으셨다. 회색 승복이 물결처럼 일렁이는 그 장관이 가슴 깊은 곳을 두드렸다.
아침 공양 시간, 공양간에 들어서자 그 안의 모든 스님들이 일제히 나를 바라보셨다. 머리 노란 어린 여자애가 느닷없이 나타났으니 당연한 반응이었다. 미어캣 떼처럼 내가 지나가는 곳마다 고개를 돌리셨다. 살짝 쑥스러웠지만, 어차피 다 같이 살아야 할 분들이니 고개를 꾸벅 숙여 인사를 드렸다.
그리고 드디어, 나는 『불명경』을 들고 법당 안으로 들어갔다.
법당 안에는 승가대학 4학년 졸업반 스님 한 분이 계셨다. 자그맣고 통통하고 귀엽게 생기셨는데, 눈빛만큼은 서늘할 만큼 날카로우셨다. 그 스님도 100일 기도 중이라고 하셨다.
책 첫 장을 폈다. 부처님의 명호를 한 분씩 부르고, 한 배. 또 부르고, 한 배.
한 시간쯤 지났을까. 온 얼굴에 땀이 맺혔다.
옆에서 스님이 목탁을 치며 염불을 이어가셨다. 혼자였다면 진작 포기했을지 모른다. 그 목탁 소리가 묘하게 박자가 되어, 나를 붙들어 주는 것 같았다.
나, 진짜 스님이 되고 싶은 거야? 아니면 그냥 현실에서 도망치고 싶었던 거야?
머리 깎고 스님이 되고 싶은 거 맞아…?
다음 편에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