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여 년 전 목사님의 설교가 문득 떠올랐다. "첫 고추를 따지 마세요." 내용인즉슨 이렇다.
시골의 어떤 농부는 남들보다 더 부지런했다. 그는 누구보다 일찍 일어나서 고추밭에 나갔다. 그리고 항상 첫 고추를 땄다. 그에겐 그 첫 고추가 자랑스러운 훈장이었다. 처음엔 자존감을 높여주던 도구였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남들을 정죄하는 도구로 전락해 버렸다. '당신 나보다 일찍 일어나서 첫 고추를 따본 적 있어?' '당신이 나보다 부지런하다고 말할 수 있어?' 그런 식으로 남들을 평가하고 무시한 것이다. 결국 그에겐 첫 고추만 남았다. 그의 주변엔 아무도 남지 않았다.
십수 년 전의 이 설교가 불현듯 떠오른 이유는 뭘까. 어쩌면 나도 모르는 사이 내 안에 '첫 고추'가 자리 잡은 것은 아닐까. 남들을 함부로 정죄하고 스스로를 대단하다고 느낀 것은 아닐까. 이러한 물음이 두려움으로 다가왔다.
그래도 첫 고추의 위험성을 일찍 깨달아 다행이다. 그리 잘난 것도 아닌, 남들보다 조금 더 나은 그 무언가를 가지고 함부로 평가하지도 정죄하지 말자. 내겐 그럴 자격도 능력도 없다. 첫 고추는 나를 높이는 훈장이 아닌 나를 되돌아보게 하는 거울이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