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철학을 잘 모른다. 그러나 소크라테스가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지는 알 것 같다. '너 자신을 알라'라는 말이 하루에도 몇 번이고 생각나기 때문이다.
오늘 상당히 기분 나쁜 일을 겪었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보다는 왜 화(火)가 났는지 이유를 아는 게 중요했다. 오늘 겪은 일은 살면서 한 두 번 있을까 말까 한 아주 이례적인 일이지만, 내가 느끼는 분노는 다른 경로를 통해서라도 또다시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여러 가지 상황이 복잡했지만 핵심은 명확했다. '타인에 의한 강제적인 계획의 변경'이었다. 살면서 내가 계획한 대로 일이 딱딱 맞아떨어지는 경우는 많지 않다. 계획이란 건 수정이 있을 수밖에 없으며, 그랬을 때 더 좋은 결과로 이어지는 경우도 많다. 중요한 것은 그 계획의 변경이 '누구'에 의한 것인가 하는 문제다. 가까운 지인이나 내가 좋아하는 사람 때문에 계획을 변경해야 한다면 아쉽긴 해도 크게 문제 되진 않았던 것 같다. 그러나 전혀 모르는 사람, 더욱이 싫어하는 사람 때문에 계획한 일에 문제가 생긴다면 대부분 화가 났던 것 같다. 특히, 오롯이 나와 관련된 계획에 차질이 생겼다면 더 그랬다. 나는 그걸 오늘에서야 알았다.
돌이켜보니 살아오면서 이 같은 경우가 적지 않았다. 그때는 분노의 이유도 잘 모른 채 화를 내고 시간이라는 약을 복용하며 무던함이라는 면역력을 키워온 것 같다. 시간은 어떤 상처에도 효과는 있지만 결코 치료제는 될 수 없다. 완치를 위해서는 병의 원인을 정확히 알아야 한다.
인간은 참 이기적이다. 모든 사람이 다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최소한 나를 보면 그렇다. 다른 사람에 의해 피해받는 것에 이렇게까지 화를 낸다는 게 부끄럽고 민망하다. 분명 억울한 일을 겪었고, 항변할 이유는 많지만 어쨌든 내 잘못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내 탓이오'라는 고백이 가식보다는 진실에 가깝다는 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