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스타크래프트 세대이다. 쌈장 이기석 선수까지는 아니지만, 임요환, 이윤열, 최연성으로 이어지는 황금세대를 경험했다. 당시에는 신문물의 PC게임이었지만 이제는 아날로그 감성이 더 크게 묻어나는 게임이 되어버렸다. 그래도 여전히 스타크래프트를 좋아한다. 아니 게임은 스타크래프트만 한다.
예전에는 피시방에 가서 스타크래프트를 직접 하는 걸 좋아했다. 머릿속에 생각나는 빌드를 키보드라는 도화지에 그려내면 모니터라는 액자에 멋지게 걸 수 있었다. 더욱이 프로게이머들이 사용하는 경기 운영을 얼추 흉내 내어 승리하는 날이면 내가 이영호고 이제동이고 김택용이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게임을 직접 하는 것보다 보는 것에 더 큰 재미를 느끼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마음만큼 따라주지 않는 손가락에 의존하며 스트레스받기보다는 좋아하는 선수가 승리하는 모습에서 대리만족을 느끼는 게 훨씬 편했기 때문인 것 같다. 그래서 요즘에는 보는 스타, 스타리그에 빠져있다.
스타리그 ASL 시즌 11 대회 결승전이 어제 끝났다. 우승은 임홍규 선수가 차지했다. 사실 임홍규 선수를 특별히 좋아하진 않았다. 다만, 꾸준히 실력이 향상되고 결과로써 입증하는 모습이 상당히 인상 깊었다. 시즌 8에서는 16강, 시즌 9는 8강, 시즌 10은 4강 그리고 시즌 11에서 우승했다. 이보다 더 꾸준하다고 표현할 수 있는 이력이 있을까? 스토리만 살아남는 시대에서 임홍규 선수의 우승은 그야말로 스토리 그 자체이다.
우승을 확정 짓는 순간과 우승 후 인터뷰를 하는 모습에서 임홍규 선수의 절박함과 그동안의 노력이 한순간에 느껴졌다. 물론 내가 느꼈던 건 실제 그 선수가 경험하고 느꼈던 것의 지극히 작은 부분에 불과할 것이다. 우승이라는 타이틀은 가장 빛나지만 가장 정확하진 않다. 우승을 이루기까지의 그 과정이 가장 정확할 것이다.
최근 시작된 오디션 프로그램 <라우드>에서 프로듀서 박진영 씨가 이런 말을 했다. ‘보이지 않는 걸 보이게 하는 것이 예술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이 말을 얼마나 정확하게 이해했는지는 모르겠다. 그래도 자신 있게 말하고 싶다.
나는 어제 임홍규의 예술을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