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쉬운 말을 왜 못 하니
아무리 외국어를 오래 배웠다고 해도 모국어 문화의 영향에서 벗어나긴 어렵습니다. 특히 일상에서 자주 쓰는 인사말이나 예절 부분에선 더 심합니다. 살면서 우리나라 말로 내뱉어 본 적 없는 표현을 그것도 외국어로 말하려니 어색할 수밖에 없는 것이지요. 머리로는 ‘아, 이럴 땐 이 말로 반응해야 해’라고 생각하지만 실제에선 반사적으로 올바른 대답이 튀어나오는 게 쉽지가 않습니다. ‘이 말을 했어야 하는데!’라며 제가 여행 중 큰 어려움을 겪었던 인사말 두 가지에 대해 얘기해보려고 합니다.
1. Good, and you? : 상대방이 인사를 할 때
아마 온 국민이 이 영어 문장만은 기계적으로 외우고 있을 겁니다. ‘How are you? Fine thank you and you?’ 영어 교과서 맨 첫 장에 나오는 표현이어서인지 사람들 머릿속에 강하게 남아있습니다. 하지만 교과서는 이 인사가 실제 어떤 상황에서 사용되는지는 상세히 알려주지 않았습니다. 우리나라 초등학교에서 처음 알파벳을 배우고, 한국 교육 과정에 충실하여 영어를 배운 저는 ‘How are you’가 우리나라 말로 ‘잘 지내?’라는 안부 인사인 줄만 알았습니다. 그러니 실제로 해외여행을 다니면서 당황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한국에는 없는 이 인사 문화 때문에 말입니다.
알고 보니 ‘How are you?’는 우리말로 어떻게 지내냐고 묻는 것과 다른 결을 가진 질문이었습니다. 잘 지내냐는 말은 한국의 기준에선 원래 알고 있던 사이나 친구끼리 오랜만에 다시 만나게 됐을 때만 성립하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외국에서는 처음 보는 사람들끼리는 물론이고 상점 직원조차 손님에게 이 말을 건넵니다. 이를 거칠게 직역하면 ‘지금 네 상태는 어때?’라고 할 수 있고, 우리말로 가장 가까운 표현은 ‘안녕하세요’입니다.
여기서 토종 한국인인 저에게 문제가 발생합니다. 안녕하세요라는 인사를 들어도 우리는 ‘네, 저는 안녕해요.’ 혹은 ‘네, 아무 일 없어요’ 등으로 대답하는 문화가 없습니다. 하지만 외국에선 다릅니다. 정말 지금 제 상태가 어떤 지 기다리는 상황이 많습니다. 이제껏 만나는 사람에게 그들이 안녕한지 물어만 봤지(‘안녕하세요?’), 진짜 안녕한 지 그 질문에 답을 해본 적이 없는 제가 이 새로운 인사 예절을 체득하는 게 쉬울 리가 없었습니다. 사실 ‘Good’, ‘Great’ 등으로 짧고 간단하게 받아치면 됩니다. 하지만 자연스러운 인사와 함께 이 몇 단어 구사하는 게 제겐 가장 적응하기 어려운 표현이었습니다.
제일 헷갈리는 상황은 가게 직원들이나 길에서 만난 사람 등 처음 보는 사람이 ‘How are you’라고 인사했을 때 제가 대답을 해야 하는지였습니다. 한국인 사고의 기준으로는 그 사람들이 지금 나의 컨디션을 왜 묻는지 이해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우습지만, 처음에는 질문하는 상대방이 제 안부를 진심으로 궁금해할까를 고민한 뒤에 ‘Good and you?’로 저도 관심을 표했습니다. 이런 순간은 사소하지만 매번 사람들과 인사할 때마 제게 꽤나 곤란했던 문제였습니다.
외국인 친구들에게 여러 번 물어도 보고, 해외 생활 경험이 쌓이다 보니 이제는 어느 정도 이 인사문화에 익숙해졌습니다. 낯선 사람이거나 안면을 튼 사람이거나 관계없이 상대방이 ‘How are you doing’이라고 질문한 뒤 나를 계속 쳐다보고 있으면 대답을 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상대방이 그 말과 함께 나를 지나치거나 다른 일에 몰두한다면 그 의미는 우리나라 말로 ‘안녕하세요’와 같기 때문에 굳이 말을 덧붙이지 않습니다.
2. You’re welcome : 상대방이 감사 인사를 할 때
참 이상하지요. 그렇게 꾸준히 여행을 다녔고, 지금은 호스텔에서 일하고 있으면서도 제가 아직도 당황스러운 순간은 ‘감사합니다’란 말을 들었을 때입니다. 누구나 영어를 처음 배울 때 감사 인사를 주고받는 상황을 연습합니다. 그만큼 감사는 기초적이면서 실생활에서 필수적인 표현이라는 것이지요. 저도 ‘You’re welcome”란 표현을 귀가 따갑도록 들었습니다. 하지만 이 말이 아직까지 제 입에 붙지 않고 있습니다. ‘You’re welcome’을 대신해 쓸 수 있는 표현은 My pleasure, No problem 등 수없이 많습니다. 문제는 영어 단어, 기억력 따위가 아닙니다. 감사하다는 말을 들었을 때 그에 알맞은 ‘대답’을 해야 한다는 문화가 낯선 것입니다.
보통 한국에서는 상대가 고맙다고 인사했을 때 분명한 단어로 대답을 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기껏 해봐야 미소와 함께 ‘아니에요’라고 흘려 말합니다. 실생활에서 사용하는 좀 더 적극적인 표현이라 해도 ‘어우 뭘 요’, ‘별말씀을요’와 같은 말이 전부입니다. 겸손을 강조하는 문화의 영향이 언어 습관에도 묻어난 것일까요. 저도 그간 한국에서 ‘감사합니다’라는 말에 별 다른 말 없이 웃음으로 대답을 대신하곤 했습니다. 오랜 시간 굳어온 이 우리말 습관이 호스텔에서 제 발목을 잡고 있습니다.
다른 외국인 동료들은 참 친절하게 감사 대답을 잘합니다. 어쩜 그리 예쁘게 ‘넌 항상 환영이야(You’re welcome)’, ‘나의 기쁨이야(My pleasure)’로 화답하는지 부러울 따름입니다. 손님이 아닌 동료들 사이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나라처럼 자신이 준 도움은 아무것도 아니라며 쑥스러워하기보다는 다른 문화에선 ‘너를 도울 수 있어서 정말 기쁘다’는 감정을 적극적으로 드러내는 데 익숙합니다.
아직까지도 저는 그런 인사말이 입에서 튀어나오지 않아 웃음만 짓고 있습니다. 특히 손님을 체크인할 때 예의 바른 사람들은 제가 조그마한 안내를 해도 고맙다는 말을 꼭 덧붙입니다. 대화의 대부분이 감사하다는 말로 가득 찰 때도 있습니다. 이때 저도 그에 맞춰 정중하게 답례를 해야 하는 걸 느낍니다. 하지만 항상 타이밍을 놓칩니다. 반사적으로 한국식 웃음만 나오고 말기 때문입니다. 뒤늦게 Thank you에 반응하기엔 상황이 어색해질 게 뻔합니다. 그래도 본심은 그게 아니었다는 걸 전달하고 싶은 마음에 제가 고안한 게 있습니다. 바로 할 수 있는 한 최대한 활짝 웃어 보이는 것입니다. 대화에서 함박 미소를 짓는 건 조금 늦은 박자에도 위화감이 없습니다. 저도 다른 외국인들처럼 친절한 단어로 감사 응대를 할 수 있을 그날까지 당분간은 입꼬리라도 열심히 올려보려고 노력합니다.
해외여행을 준비하는 분들은 미리 이 표현을 충분히 연습하셔서 좀 더 자연스럽게 외국인들과 소통하시길 바랍니다. 해외 체류 경험이 없는 토종 한국인들도 자신감을 갖고 다른 나라로 떠날 수 있도록 앞으로도 제가 겪은 시행착오를 꾸준히 공유하도록 하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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