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아내의 고모의 딸, 아내의 고종사촌의 결혼식이 있어서, 서울로 향했다. 난 한 번도 결혼식에서 축의금 받는 일을 해본 적이 없는데, 오늘 그 부탁을 받았다. 40년 만에 처음으로 맡는 임무였다. 그래서 2시 결혼식인데도 불구하고, 10시에 출발해야 했다. 어제 과음을 한 탓에 평소보다 훨씬 늦게 일어나, 준비를 하고 출발을 했는데, 생각해 보니 아무것도 안 먹은 터라 배가 고팠다. 네비를 보니, 도착 예상시간이 조금 빠듯하여 어디서 뭘 먹을 수도 없고 도착해서 일을 하다 보면 오후 늦게나 첫끼를 먹게 될 것인데, 막막함이 몰려왔다. 사실, 막상 일을 하다 보니, 정신이 없어서 배가 고픈지도 몰랐다.
나는 서울은 정말 못살겠다. 같은 임무를 부여받은 처남과 함께 차를 타고 이동했는데 서울을 진입하는데 1시간이 걸렸는데, 그러고 나서 목적지를 도착하는 훨씬 짧은 길도 똑같이 1시간이 걸렸다. 평생을 여유롭고 한적한 동내에서만 살던 나에게 서울의 혼잡한 도로와 교통체증은 영 적응이 되질 않는다. 서울 사람들이 생각할 땐 신기하겠지만 난 여유롭고 평화로운 강원도가 좋다. 근데 요즘 춘천도 차가 점점 많아지는 것 같아 걱정이 된다. 교통체증은 싫은데 말이다.
12시 30분쯤 예식장을 도착해서, 관계자에게 안내를 받고 거의 곧장 일을 시작했다. 처남이 주로 돈을 받고 식권을 나눠주는 일을 했고, 나는 방문객의 이름과 축의 금액을 기록하는 일을 했다. 초반에는 사람들이 그리 많지 않아서 꽤 여유롭게 일하다 보니 배가 좀 출출했는데, 아내와 딸이 사다준 초콜릿과 바나나 우유 덕에 조금이나마 허기를 달랠 수 있었다. 시간이 조금 지나자 사람이 정신없이 몰려들었고 이내 아무 생각을 하지 못하고 일만 하게 됐다.
일을 시작하고 아직 여유가 있을 시기에, 신랑 측 축의금을 받는 쪽에서 작은 실랑이가 있었다.
하객 중 한 명이 다가와 식권을 요구하는 상황이었다. 그는 꽤 중년의 남성이었는데, 그가 축의금을 직접 하지 않고, 계좌로 이체했다고 말을 한 모양이다. 그런데 축의금을 받던 청년이 계좌 이체한 내용을 좀 확인할 수 있냐고 물어본 모양이다. 그 말을 들은 상대가 그 상황을 굉장히 불쾌해하며 축의금을 받던 청년을 굉장히 나무라는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당시 사람이 그리 많지 않아 상황이 커지지도 않았고 그걸 인지하는 사람도 별로 없었지만, 불행인 것은 보는 사람이 많고 이목이 집중되었다면 금방 끝났을 상황이 이상하게 어그러져 꽤 오랜 시간 지속되었다는 점이다. 나는 뭐 그런가 보다 하고 넘기려고 하다, 너무 지속적이고 무례하게 이야기를 하는 것 같아서 슬며시 자리에서 일어나서 무언의 눈빛을 보내기 시작했다. 조금만 더 그 상황이 지속되면 한마디를 할 요량으로 발걸음을 떼기 시작했는데, 나 때문인지 어떤지는 모르겠지만 상황이 급 마무리가 되었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확인을 요구한 청년의 행동이 무슨 문제가 있는지도 모르겠었다. 그 중년의 남성은 어디에 꽂혀서 그렇게 말을 하고 행동했을지는 모르겠지만, 중요한 건 청년에게 예의와 무례에 대해 이야기하던 그에게서 그 청년을 향한 존중과 배려가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 중년의 남성에게 안 좋은 일이 있었거나 결핍된 무언가가 있었겠지 하며 생각을 접었다. 신기하게 우리 쪽에서는 요구도 하지 않았는데 먼저 핸드폰으로 확인을 시켜주며 식권을 받아가는 하객이 있었다.
이렇게 사람마다 생각이 다르구나 하는 것을 또 느끼는 장면이었다.
해프닝이 지나가기 무섭게 바빠졌다. 간간히 반가운 얼굴들은 보고 인사하는 것을 제외하면, 얼굴을 파묻고 돈세고, 적고, 확인하고의 반복이었다.
예식이 시작하고 30분 정도가 지나자 하객이 발걸음이 뜸해졌고, 얼추 마무리가 된 것 같아 돈을 세기 시작했다. 오차 없이 일을 마무리하며 완벽히 임무를 수행해 냈다.
오후 4시가 다 되어서야 하루의 첫끼를 먹을 수 있었다. 주린 배를 채우며 네비를 찍어보니 여전히 서울 시내는 막혔고 걸리는 시간은 2시간 정도였다. 어제의 피로와 오늘의 피로가 누적되어, 돌아오는 차 안에서는 졸다 깨다를 반복했다. 운전을 해준 처남이 있어 얼마나 감사한지 모르겠다. 이렇게 집을 나선 지 9시간이 지나서야 오늘의 여정을 마무리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