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에게 친절하다는 것은 “당신에게 무언가를 강요하지 않겠다”는 뜻을 담고 있다. 겉으로만 친절한 척하며 자신의 뜻을 관철하려는 경우도 있지만, 그런 친절은 상대방이 의도대로 움직이지 않으면 쉽게 사라진다. 포장된 상냥함은 결국 질서 유지나 권력을 위한 장치일 뿐, 상대에 대한 진정한 존중은 아니다.
진짜 친절함은 쉽지 않다. 합의와 조율의 시간이 필요하고, 서로가 받아들일 때까지 소통해야 한다. 그래서 교실에서도 친절한 교사는 많지만 모든 문제를 학생과 함께 논의하는 경우는 드물다. 현실적으로 모든 것을 상의하는 것은 불가능하고, 어떤 조직이든 결정권자는 필요하다. 그러나 상대를 존중하고, 강요하지 않으며, 상냥함과 친절함으로 대하려는 태도를 유지한다는 것은 가능한 많은 것을 함께 나누고 이야기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설사 필요에 의해 판단을 내려야 할 때가 있더라도, 다시 원래의 태도로 돌아오는 것이 중요하다.
이런 자세가 유지되는 조직이나 공동체는 궤도에 오르기까지 많은 시간과 노력을 필요로 한다. 그래서 효율을 위해 상냥함과 다정함을 포기하는 경우도 있다. 카리스마와 권력은 질서 유지에 매우 효율적이지만, 그 부작용은 누군가를 굴복시키거나 복종하게 만드는 구조를 강화한다는 데 있다. 오늘날 이런 방식은 시대에 맞지 않는 태도다.
진정한 친절함은 상대에게 무언가를 강요하지 않는다. 이런 본질 때문에 사람들은 때때로 친절하면 손해 본다고 말한다. 상냥한 사람은 이용당하기 쉽다고 말하기도 한다. 하지만 친절함과 상냥함은 곧바로 무조건적인 양보를 의미하지 않는다. 자신의 경계가 분명한 사람이 가진 친절함은 타인을 수용할 수 있고 나를 설명할 수 있다는 신호일 뿐, 자신을 다 내어주겠다는 뜻이 아니다. 오히려 마음의 문을 여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앞서 말했듯, 삶에서 하나의 태도가 모든 상황에 적용될 수는 없지만, 방향성을 설정하는 것은 중요하다.
요즘 사회를 바라보면 점묘화가 떠오른다. 점 하나하나는 독립된 존재이지만 전체를 이루는 중요한 요소다. 하나쯤 지워도 될 것 같지만, 결국 그림을 완성하는 데는 그 점 하나가 필수적이다. 우리는 그런 사회를 살아가고 있다. 서로의 거리를 존중하면서도 함께 무언가를 추구해 나가는 공동체. 그런 공동체를 만들어 가기 위해 상냥함과 다정함은 꼭 필요한 삶의 자세라고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