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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완벽한오늘 Jul 20. 2023

나는 모성애가 없다.

엄마이지만 모성애는 없다.

나는 모성애가 없다.


실은 모성애가 무엇인지도 모르겠다.


자식을 향한 어머니의 본능적인 사랑이라는데, 본능적이라는 단어도 내게는 납득이 가지 않는다.


나는 아이와의 물리적 정서적 교류를 통한 인과관계가 명확한 사랑을 한 것이지, 말로 설명할 수 없는 본능적인 사랑에 빠진 것은 아니다.


나에게 본능적이라는 것은 잠이 온다는 것, 배가 고파서 무엇이든 먹고 싶다는 것이다.

내게 본능은 그런 것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아이를 사랑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아이를 사랑하지만 그것은 그냥 사랑이지, 내가 꼭 '엄마'이기 때문만은 아니라는 것이다. 


아이가 어렸을 때에는 아이가 한없이 작고 보호해야 할 존재라고 느껴진 것이 컸다. 

물론 아이를 보고 싶고, 안고 싶고, 뽀뽀하고 싶은 마음이 드는 사랑의 감정도 사실이지만,

아이의 존재가 부담이 되거나, 귀찮은 생각이 들었던 것도 사실이다.


나는 이 복합적 감정들 중에 긍정적 감정들만을 끄집어 내서 희생과 수용, 책임감을 강요하는 듯한 '모성애'라는 단어에 거부감이 드는 것 같다. 


엄마와 모성애라는 단어에는 보이지 않는 사회적 강요들이 도사리고 있다.

'이렇게 해야 한다'는 기준들로 인한 숨이 턱 막히는 압박들이 당연스러운 듯 고개를 내민다.


나는 나의 엄마에게도 모성애라는 단어는 잘 쓰지 않는다.


나의 엄마도 같은 인간으로 삶을 함께 살아오며 정과 연민과 애증이 쌓여가며 통합적 사랑의 감정이 쌓였으리라 생각된다. 



아이를 사랑하는 것은 남녀 간의 사랑과 같은 양상이다.


아이가 감동을 전했던 말들과 웃음이 번지게 했던 그 행동들, 공유한 추억들 그리고 그 덕분에 행복감이 머물다간 시간이 쌓일수록 사랑이 커져감을 느낀다. 


남녀간에도 함께한 시간과 소중한 말들, 잊지못할 추억들이 쌓여갈 수록 그 사랑이 깊어지리라.


물론 아이를 향한 사랑이 남녀 간의 사랑과 다른 점도 있다.


나는 아이를 향한 사랑에서 자존심을 내세우지 않고 무조건적인 사랑을 줄 수 있다는 것에서 만족감이 들었다.

재지 않고, 마음껏 사랑을 표현해도 된다는 것이 나로 하여금 충만감을 주었다.

남녀 간의 사랑은 밀당, 자존심, 기선 잡기 등 그간 각자 간의 생활양식과 패턴, 머릿속에 가득 찬 각자의 신념들로 인한 불안함과 오해들을 동반한다.


하지만 도화지같은 아이에게는 다르다. 


하얀 도화지에 그림을 그리듯 아이에게는 마음껏 사랑의 물감을 칠할 수 있었다. 



사랑의 방식은 개인마다 다르다. 


어떤 사랑을 해야 한다는 기준은 없다.


남들과 비슷한 방식으로 아이를 사랑하지 않는다는 것은 죄책감을 가질 일은 아니다.


물론, 도덕적으로 어긋나는 일은 절대 해선 안된다.


하지만 부도덕한 행동이 아니라면, 아이의 양육방식이 남들과 비교하며 부족하거나 유별나다는 것으로 작아지지는 않았으면 한다.


한 개인의 삶 속에서의 경험과 고민, 갖가지 생각과 방어, 감정들이 모여 사랑을 만든다.


사랑하는 사람과 사랑하는 대상의 기질과 경험, 관계 속에서의 물리적, 정신적 시간이 다른데, 모든 관계들이 같은 사랑을 할 수는 없다.


이러한 사랑들을 '모성애'라는 단어로 국한시켜 많은 엄마들의 행동을 제한하고 죄책감이 들게 하지 않았으면 한다. 


사랑의 방식과 표현, 그 과정은 저마다 다르다. 

이것은 사실이다.



나는 아이에게 딱 사랑하는 만큼, 딱 내 감정만큼 솔직히 표현하려고 노력한다.


아이가 미울 때도 있고, 귀찮을 때도 있다.

그럴 때는 아이에게 솔직하게 표현한다. 

내가 지금 화가 날 것 같고, 내가 지금 지쳐있는 상태라고..


그리고 아이의 어떤 행동에 기분이 상하면 솔직하게 말한다.

엄마는 지금 기분이 상했고, 엄마가 나중에 똑같이 그렇게 말해도 괜찮겠냐는 협박섞인 말을 건낸다.



지금 내게 아이는 동지이다.


삶을 같이 살아가며 함께 하고, 사랑하며, 성장해 나가는 동지.

내게 아이는 일방적으로 주기만 해야하는, 보호해야만 하는 대상은 아닌 것 같다.  




아이를 사랑하는 것과 스스로를 사랑하는 것은 반드시 함께 해야 한다.


아이를 사랑하는 과정에서 나를 알아가고, 스스로를 사랑하는 방법을 배울 수 있다.


나를 이해하지 못하면 사랑하는 이를 힘들게 할 수 있다.


사랑하는 이에게 상처를 주지 않기 위해서는 스스로를 더 정성스럽게 들여다보고,

말과 행동을 더 건강하게 표현해 내야 한다. 


그렇게 사랑을 통해 나는 스스로에게 더 정성을 쏟게 되었다. 


내가 세상에서 가장 확실하게 사랑이라 말 할 수 있는 대상은 아이가 맞다.

하지만 나보다 더 아이를 사랑하는지는 잘 모르겠다.

어떤 때는 아이보다 나를 더 사랑하는 것 같고, 어떤 때는 나보다 아이를 더 사랑하는 것 같다.


어쩌면 누구를 더 사랑하는지가 왜 중요한가 싶다.

그냥 사랑한다는 것, 그리고 그 사랑이 더 온전한 나로 살게 한다는 것이 중요하다.


가끔 내가 나를 사랑하는지 잘 느껴지지 않을 떄가 있다. 

하지만 아이를 사랑한다는 것은 확실히 느껴진다. 

한 동안 얼굴을 쳐다보고 미치도록 이쁠 때가 있고, 보고있지만 계속 보고 싶을 때가 있다.

아이에게 뽀뽀하고, 만지고, 끌어안고, 칭찬하고, 원없이 표현을 쏟아낸다.


아이를 사랑하는 나를 들여다보며 나 자신도 그렇게 사랑해야겠다는 생각을 해 본다. 



단언컨데, 나는 모성애가 없다.


나의 사랑은 모성애가 아니다. 


나는 그냥 나와 아이를 사랑 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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