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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완벽한오늘 Jul 13. 2023

초등 아이와 갓생 살기, 자기 계발 같이 하기

학원 최초 초등 수강생, 직장인반 수강기

2달여 전부터 초등 3학년인 아이와 함께 직장인반 일러스트와 포토샵 학원을 다니고 있다.


학원에서 초등학생 수강생이 처음이라고 한다


프로그램도 영어로 되어있고, 수업 시간을 버틸 수 있을까 걱정이 되었지만, 다행히 곧잘 따라가고 있다.


같은 수강생들도 처음에는 초등학생 수강생과 함께 배운다며 신기함 반, 걱정 반의 시선을 보냈지만, 지금은 같은 수강 동료로 익숙해진 느낌이다. 

처음 일러스트 학원을 등록하게 된 건 아이가 캐릭터디자이너가 되고 싶다고 해서였다.


유튜브에 만화캐릭터 그리기 영상들이 많아서 열심히 보더니, 본인도 하고 싶어 졌다며 학원을 다니고 싶다고 했다. 


혼자서 얼굴을 분할해가며 그림을 그리더니, 언젠가 한 번은 자캐(자기캐릭터)를 그려주겠다며 어떤 스타일로 그려주기를 원하는지 고객(나)의 니즈를 파악하기 시작했다.


인체 그리는 책도 사줬는데, 나중에는 컴퓨터로 그림을 그리는 펜을 사주라고 했다.

컴퓨터에 연결해서 사용하는 소형 타블렛을 사줬더니 이제는 일러스트 학원을 다녀야겠다고 했다.

어떤 학원을 다녀야 할지 고민이 되었다. 


그림을 그리는 기초부터 다지기 위해서는 미술학원을 다녀야 하는데, 컴퓨터로 그림을 그리는 것을 원한다니 일러스트 학원을 다녀야 하나.. 싶었다.


미술과 컴퓨터 프로그램 둘 다 익숙지 않은 지금 덜컥 만화학원을 등록하는 것도 우려가 되었다.


학원에서 상담도 해보고, 지역 내 학원들을 수소문해 봤지만, 기본기가 없는 아이가 당장 원하는 것들을 배우기는 힘들고,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하는 일러스트 학원은 찾지 못했다. 


고민 끝에 결국 내가 아이와 같이 배우며 아이가 따라가기 힘든 부분은 직접 알려줘야겠다고 마음먹었고, 직장인 반 수업을 같이 등록했다. 


등록을 하기까지도 고민은 계속되었다. 


가장 큰 고민은 직장인을 대상으로 한 강의라서 수업시간은 월, 수, 금 7시~10시까지라는 것이다.


아이는 보통 9시 반에 잠이 들곤 하는데, 나는 충분한 숙면이 키성장 등에 가장 큰 도움이 되고, 특히 10시부터 잠드는 것이 중요하다는 믿음으로 아이의 자는 시간을 철칙처럼 지켜왔었다. 

10시에 수업이 끝나서 집에 돌아오고 씻고, 잠자리에 들면 최소 10시 반이 될 텐테.. 타협을 해야 하나 싶었다. 


그리고 수강료가 만만치 않았다. 

나까지 두 명의 수강료를 지불해야 하는데, 내 수강료는 내일 배움 카드로 일부 지원받아 할인이 되었지만, 아이는 일러스트 학원의 일반인 수강생이어서 할인해도 두 명 해서 2달에 50만 원 정도 비용이 들었다.

퇴사를 앞둔 시점이라 유난히 타격이 컸다.


마지막으로 가장 우려스러운 것은 3시간의 수업시간과 영어로 된 프로그램이었다. 

초등학교 저학년이 3시간씩 그것도 저녁시간에 수업을 집중해서 듣는다는 것은 강사님들도 걱정한 부분이었다.

직장인 대상 자격증 과정인지라 수업 진도가 꽤 빠르게 나갈 것이고, 당연히 아이만을 배려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이게 가능할까.. 하다가 말면 돈만 버리는데.. 


하지만 아이는 확고했다. 

아이는 하고 싶고, 할 수 있다는 의지를 보였고, 걱정스러운 마음은 재차 다짐을 받아내는 것으로 달랬다.


그리고 드디어 개강일이 다가왔다. 


아이와 함께 학원을 다닌다는 것은 생각보다 재미있고, 아이 교육에도 도움이 되는 일이었다. 


아이와 함께 학원을 다니면 좋은 점은 크게 4가지로 들 수 있다. 


첫째, 서로의 자기 계발의 명분이 되어주고, 함께하니 집중도가 높아진다.


일러스트, 포토샵 분야는 내 또한 배우고 싶은 분야였다.

하지만 딱히 필요성을 느끼지 못해서 시작할 생각을 하지 못했다.

그런데 아이가 명분이 되어주니, 배울 이유는 명확해졌다. 


아이가 어리다고만 생각했는데, 확실히 뇌는 더 싱싱한 것 같다.

강사님의 이야기를 듣고 금방 잊어버리는 40대의 뇌와는 역시 차이가 있다.

나는 컴퓨터를 다루는 것에 조금 더 익숙했고, 강사님의 이야기를 이해하는 것이 나았다.

그렇게 아이는 암기 중심으로, 나는 강의 이해 중심으로 서로 물어가며 수업을 들었다. 


그리고 서로가 부족한 것을 채워줘야 하니, 아이도 나도 강의에 집중하게 되었다. 

이번 강의를 들으며 새롭게 느낀 점은 의외로 아이가 나에게 기억해서 알려주는 것들이 많았다는 것이다. 


아이는 나에게 알려주는 것이 뿌듯했는지 더 책임감을 가지고 수업을 듣게 되었다. 


확실한 것은 함께 수업을 들으니, 서로가 새로운 분야에 자기 계발을 시도하게 되고, 그 자기 계발은 더 꾸준히 책임감을 가지고 지속할 수 있다는 것이다.


아이와 학원을 다니면 좋은 점 두 번째는 내가 회춘한 느낌이다.


학원을 다니며 학창 시절로 돌아간 듯한 느낌이 들었다. 

저녁시간에 아이와 수업을 들으니깐 아이가 금방 배고파했다. 

학원 근처에는 도넛가게가 있었는데, 쉬는 시간 10분 안에 뛰어가서 먹고 돌아와 자리에 앉아야 했다.

쉬는 시간이 임박하면 함께 뛸 준비를 했다. 

그리고 쉬는 시간을 공지하면 정신없이 뛰어간다. 

그리고 허겁지겁 먹고, 다시 정신없이 뛰어 돌아온다. 

아이는 오리지널 도넛을 2개씩 먹는다. 

도넛가게 점원도 처음에는 접시며, 포크며 챙겨주다, 이제는 아이가 티슈 한 장을 감싸고 손에 쥐어주면 편하게 먹는다는 것을 기억하고 웃으며, 도넛을 건넨다.

그렇게 늦지 않으려고 시간을 체크해 가며 도넛을 먹는 그 시간이 참 귀하고 재미있다. 


또 한 가지 회춘한 느낌이 드는 이유는 학원이 동네에 있어서 자전거를 타고 등원한다는 것이다.

아이가 태권도 학원이 끝난 후 바로 학원을 가야 해서, 끝날 시간에 맞춰서 자전거를 타고 학원 앞에서 기다린다. 

아이가 나오면 지각하지 않으려고 부리나케 자전거를 타고 학원까지 질주한다. 

학원이 끝나고 돌아오는 길에도 시원한 여름 밤바람을 아이와 자전거를 타며 맞고 있다. 


이 루틴이 또 회춘하는 것 같다. 


학원이 끝나고 집에 돌아오면 또 배가 고프다.

그래서 요즘은 자꾸 라면을 끓여 먹게 된다. 

살이 찔 것 같아 이제는 자중해야겠다.

하지만 야식 라면 또한 쏠쏠한 재미가 된다. 



아이와 학원을 다니면 좋은 이유 세 번째는 아이의 학습태도를 잡아줄 수 있다는 것이다. 


앞서 말했듯 직장인대상 수업이고, 자격증 준비를 하는 사람들도 있어서 진도가 빠르게 나가야 했다. 

그런데 의외의 복병은 영문타자였다. 

파일 저장 이름이나 레이어이름은 영어로 써야 하고, 단축키도 죄다 영타였다.

한글 타자도 연습 중인 아이가 영타가 익숙할 리 만무했다.  

아이가 영타를 치고 있으면 진도가 벌써 훅 나가버린다. 

써주는 것도 한두 번이었다. 


그리고 일러스트로 그림을 그릴 때에도 아이는 본인 마음에 들지 않으면 계속 수정작업을 마무리하고 싶어 했다. 

그렇게 혼자 수정작업을 이어가다가 강사님 말씀을 놓치기도 했다. 

그렇게 처음에는 수업 진도를 따라가는 데에 제동이 걸렸고, 나중에는 혼자 일러스트로 장난을 치게 됐다.


그래서 한 번은 마음먹고 아이와 대화했다.

수업 따라가기 힘드냐고, 괜찮겠냐고 물었다. 

아이는 힘들다고 솔직하게 이야기했다. 

강사님 말씀이 어렵기도 하고, 진도가 너무 빠르다며 하소연했다.

이야기를 다 듣고 아이에게 이야기했다.

이 강의는 스스로 선택한 것이고, 엄마는 이를 위해 돈과 에너지를 할애하고 있음을 인식시켰다. 

그리고 그림 작업이 늦어지면, 그것은 미뤘다가 쉬는 시간에 마무리하고, 수업시간에는 강사님의 말씀을 듣고 따라 하는 것을 우선하자고 권했다. 

파일이름들은 한글로 대충 적는 것으로 하고, 압축키만 익숙해지도록 연습하기로 했다. 


이후 아이는 그림 수정 작업을 하다가도 강사님의 설명이 시작되면, 그럼 작업을 멈추고 설명을 들었고, 쉬는 시간에 실습을 마무리했다. 


한 달 반의 시간이 지난 지금은 단축키도 꽤 익숙해지고, 제법 결과물도 내고 있다.


학습 태도는 학교 수업시간에도 중요한 부분이다.

나는 함께 학원을 다닌 덕분에 직접 아이의 학습 태도를 접했고, 자연스럽게 이를 바로 잡아줄 수 있었다. 


아이와 함께 학원을 다니면 좋은 이유 네 번째는 아이와 공감대 형성할 이야기가 많아진다는 것이다. 


같은 학생입장으로 어떤 부분은 힘들고, 어떤 부분은 재미있는지 이야기하다 보면 할 이야기가 더 많아진다.

그리고 아이의 이야기가 어떤 의미인지 공감할 수 있는 영역이 넓어진다. 

아이는 나에게 많은 이야기들을 하게 되었고, 나는 그것을 충분히 납득할 수 있었다. 

일방적으로 학교에서의 일상만이 아니라 내가 아이의 일상 속으로 더 깊숙이 들어간 느낌이 든다. 




초등학생 아이와 함께 학원을 다닐 기회는 쉽지 않다.

아이가 관심이 있어야 하고, 또 시간이나 여건이 맞아야 한다.


그래도 혹시나 아이와 함께 학원이든 체험이든 배울 수 있는 기회가 있다면, 기꺼이 아이의 친구가 되어 같이 배우는 입장이 되어보기를 권한다.


아이가 지금은 제가 그림을 못 따라가면 내가 해준다고 나서서 도와주려고 한다.

이런 과정들이 아이와 나를 한 번 더 성장하게 한다. 


앞으로도 아이와 나는 갓생을 통해 성장을 이어갈 에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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