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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octor flotte Jul 20. 2023

소중한 생각이 달아날까봐

비웃지 말고 그의 등에 대고 정중히 경의를 표해라

구부정한 자세로 머리도 기이하게 옆으로 뉘인 상태로 걸아가는 사람이 있었다. 도대체 어디에서부터 그렇게 걸어왔는지는 몰라도 불편할 뿐 아니라 목과 허리가 아플 것 같았다. 그런데 고통에 대한 동정이 아니라 하도 이상해 보여서 따라가 보았다. 그리고 잠시 멈춘 사이 물어보았다. 왜 그렇게 구부정한 자세로 이상하게 걸어가고 있는 겁니까? 어디가 불편하신가요? 도와 드릴까요? 그 사람은 최대한 나를 없는 사람처럼 무시하며, 마치 내가 느끼기에는 최소한의 에너지로 나를 한 눈에 기화시켜 공기 중으로 흩어버린 다음 다시 같은 자세와 속도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이제 내가 설명해 주겠다. 길에서 이런 사람을 보게 되면 그리고 그 사람이 아무에게도 피해를 주지 않는다면 멈춰 세우거나 뭔가를 물으려 방해하지 마라. 그 사람은 철학자이고 무언가를 골몰하다가 문제가 안 풀려 짜증과 괴로움 그리고 철학자 특유의 고집스러움으로 몸을 빌빌 틀고 있다가 갑자기 번개처럼 무언가를 깨닫게 된 것이다. 그런데 당장 그 소중한 생각을 어디에 쓸 데가 없어 글로 쓸 수 있는 데까지 가는 동안 잊어버리지 않으려고 그 상태 그대로 걸어가고 있던 것이다. 조금이라도 자세가 흐트러지다가 그 소중한 생각이 달아날까봐 걱정을 하고 있는 것이다. 철학자들은 그동안 방심한 사이 소중한 생각들을 얼마나 많이 인사도 없이 떠나보냈는지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이상하든 이상하게 보이든 상관없이 그 생각을 붙잡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비웃지 말고 그의 등에 대고 정중히 경의를 표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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