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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octor flotte Dec 01. 2023

철학에는 지금 어울리는 말이 없다

나와 저 운전자는 지금 세상의 한 가운데에 커다랗게

목요일까지 거의 일주일을 다 보내고 지친 퇴근길. 운전을 좋아해 2시간이고 3시간이고 괜찮지만 마음이 좋아하는 거지 몸이 좋아하는 것은 아니다. 빨리 지는 해 때문에 아직은 깨끗한 밤이 시작되는 저녁이었다. 고속도로를 막 빠져나와 신호등 앞에 섰는데 왼쪽을 보니 나와 비슷한 나이대의 한 남자가 포터 안에서 핸드폰을 만지작거리고 있다. 유튜브를 보는 것 같은데 정해진 것이 없다. 이것저것 그냥 영상을 눌러보고 있었다. 보는 게 아니라 그냥 누르는 것 같았다, 이것저것. 피곤해서 손가락을 움직이는 것이다. 집까지는 가야 하니. 그의 고단했던 하루가 내 마음대로 그려진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철학이 필요 없는 순간이란 게 있는 것 같다. 마치 세상을 다 아는 듯이 어려운 말들에 빠져 허우적대는 철-학자의 우스운 모습은 저기 저쪽에서 작은 소음을 만들어낼 뿐이다. 나와 저 운전자는 지금 세상의 한 가운데에 커다랗게 있다. 우리는 같이 저녁 앞에, 지치고 걱정스럽고 지루하고 조금은 안심이 되는 저녁 앞에 손을 잡고 서 있다. 아무리 생각해도 지금 철학에는 어울리는 말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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