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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octor flotte Feb 11. 2024

악의 평범성에 대한 가장 큰 오해는

후회하고 반성하면 어느 정도는 내 일을 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악의 평범성에 대한 가장 큰 오해는 그것이 그 당시 아이히만에게서 일어난 일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악의 평범성에 대한 가장 큰 오해는 아이히만처럼 그것이 크고 중요한 일이 결정되는 순간 일어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악의 평범성에 대한 가장 큰 오해는 ‘아마 나도 그런 상황 속에서는 그럴지도 몰라’라고 생각하며 대충 이해한 듯 얼버무리는 것이다. 악의 평범성에 대한 가장 큰 오해는 그런 일을 저지르고 나서 진심으로 후회하고 반성하면 어느 정도는 내 일을 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후회하고 반성하고 있으니 나는 아이히만 같은 악마는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 그것이 악의 평범성에 대한 가장 큰 오해이다.


휴일 오후, 아내와 아이와 차를 타고 아이가 많이 좋아하고 아내는 별로 좋아하지 않는 곳으로 향했다. 아내는 내심 가고 싶은 곳을 가지 못한 것에 대한 불평을 쏟아냈다. 아무튼 정해진 곳으로 가고 있으니 일단은 그냥 가자고 나는 얘기했고 아내는 쉽게 수그러들지 않았다. 자꾸 불평하는 아내에게 나는 몇 번을 참다가 제발 좀 그만 하라고 얘기하려다 결국 닥치라고 소리를 질러 버렸다. 미친 동물처럼 숨소리를 내뱉었고 나는 차를 돌려 집으로 와 버렸다. 차에서 내려 나는 집 내방으로 들어와 모든 문을 닫아버렸다. 후회하고 반성하고 있다. 사실 이유는 한 가지, 세상 고상한 내가 그런 천박한 욕을 한 것을 인정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아무튼 나는 후회하고 반성했다. 평생 욕 한번 해보지 않은 아내의 마음속에 도끼자국으로 찍혔을 상처는 안중에 없다. 그 순간 핸들을 잡고 있는 미친 동물이 무슨 짓을 저지를지 몰라 뒷좌석에서 무서워했을 그리고 영원히 지워지지 않은 충격을 받았을 아이의 두려움은 안중에도 없다. 나는 후회하고 있고 반성하고 있으니 나는 아이히만 같은 나쁜 놈은 아니다! 나는 내 할 일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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