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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octor flotte Feb 01. 2024

허무주의의 트릭은

진짜 허무주의는 80된 노모의 수전증에 있다.

허무주의의 트릭은 허무주의를 만들어낸다는 데에 있다. 허무를 만들어내고 허무함을 만들어내고 허무주의를 만들어낸다. 그럼 사람들은 이렇게 저렇게 갖다 쓰는 것이다. 허무주의가 자신과 똑같이 생긴 가짜 허무주의를 만들어 던져준다. 이런 트릭의 핵심에는 사람들로 하여금 허무주의를 어떻게든 이해하고 파악했다고 생각하게 한다는 점에 있다. 그럼 사람들은 무언가 알아낸 것처럼 만족해 한다.


진짜 허무주의는 80된 노모의 수전증에 있다. 불쌍하다고 해야 할지 마안하다고 해야 할지 잘했다고 해야 할지 못했다고 해야 할지 모르지만 다행히도 내 손은 저렇지 않다. 진짜 허무주의는 싹둑 잘린 꽃다발을 죽지 말라고 물병에 꽂아 넣는 내 모습에 있다. 물을 주는 것이 이 꽃을 살리는 것인지 죽이는 것인지 모르지만 나는 물을 주는 일을 내 일이라고 생각한다. 진짜 허무주의는 천사처럼 코를 골며 자는 내 아이에게 있다. 나에게 적당한 행복을 주고, 나를 적당히 귀찮게 하고 나에게 적당한 사랑과 적당한 미안함을 느끼게 한다. 그런 아이에게 나는 사실 아빠가 무언지도 모르면서 아빠처럼 행동하는 일을 멈출 수 없다.


삶이란 충분히 고맙고 충분히 싫다. 아, 그리고 자는 나의 모습은 또 얼마나 허무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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