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카페에서 책을 읽는 것을 좋아합니다. 특히나 바다가 보이는 이 자리에서 책 읽는 것을 좋아합니다.
지난 일요일 아침, 『사랑할 때와 죽을 때』(에리히 마리아 레마르크)를 읽으려고 카페 오픈 시간에 맞춰 갔더랍니다.
카페에는 아무도 없었는데 어느덧 한두 명씩 오기 시작하고, 중년을 넘어 어쩌면 노년기에 접어든 남녀 커플의 이야기가 귀에 들렸습니다.
두 분은 이제 서로를 알아가는 단계의 커플 같았습니다. 서로의 자식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었습니다. 여자분이 자녀에 대한 고민과 칭찬을 열심히 이야기하더라고요.^^
그런데 그 말을 듣는 남자분은 중간에 "그렇구나", "그랬군" 하며 추임새를 넣어가며 정말 잘 들어주었습니다. 듣고 기다리고, 들은 내용을 반영해 주면서 여자분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끝까지 할 수 있도록 인내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실 부부와 같은 가까운 사이에서는 중간에 말을 끊거나 부정적 의견을 덧붙이고 싶은 욕구가 생겼을 텐데 말입니다. 아직 가까운 사이가 아니라서, 말을 중간에 끊기가 어려워서 저렇게 열심히 들었을까요?
그런데 저는 부부 사이에도 저렇게 가까운 사이가 아닌 처음 만나 어색하고 서로를 지켜보고 알아가는 그런 거리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여자분이 하신 이야기의 내용은 별일 없는 이야기였지만, 별일 없는 이야기가 별일 없는 것이 아닐 수 있도록 들어주었기에 별일이 별일 없이 잘 끝날 수 있는 게 아닐까 합니다.
우리는 때로 말을 하면서 마음의 짐을 덜어낼 수 있기도 합니다. 하지만 들어주는 사람이 누구인가, 어떻게 들어주는가에 따라 그 마음의 짐을 오히려 더할 수도 있습니다. 더하기와 덜기, 그건 때로는 들어주는 사람의 마음에 따라 달라질 수도 있다는 것을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오늘은 저 사람의 마음의 짐을 덜어줄까, 더해줄까? 그건 듣는 사람의 마음에 달려 있다고 생각합니다.
내 주위에 들어주는 마음이 필요한 사람이 있다면 오늘은 좀 덜어주는 마음으로 그렇게 시간을 내어 보시면 어떨까 합니다.
그날의 송정바다를 잠시 감상해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