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행하는 문화도시

2024년 12월에 쓴 글.

by 바기넉

‘12·3 비상계엄 사태’는 민주주의의 역사를 50년 후퇴시켰다. 안 그래도 나라 걱정에 전전긍긍인데, 엎친 데 덮친 격 우리 지역에선 문화예술 현장의 퇴행이 일어났다.

춘천시가 출연기관인 춘천문화재단의 운영방침을 바꾸었는데, 조직에 과장급·팀장급 공무원을 파견한 것이다. 2018년, 춘천문화재단은 전문성과 독립성을 높이기 위해 파견됐던 공무원을 복귀시키고 민간 전문가 체제로 운영해왔다. 하지만 이를 뒤엎고 다시 공무원을 파견해 재단의 총괄을 맡긴 것이다. 안팎으로 불만이 터져 나왔다.

검사·판사 출신이 국가의 모든 장관직을 꿰차고 나라를 엉망으로 만들었다. 전문성이라고는 단 1도 찾아볼 수 없는 모습이 국정감사 등을 통해 알려졌고 국민은 혀를 내둘렀다. 공무원 퇴직자가 문화재단의 이사장을 맡는다는 것과 파견 공무원이 문화예술사업을 총괄한다는 것이 이와 별반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도시는 살아있는 생물이다. 문화는 특히 더더욱. 지역 문화·개념은 고전적인 정의를 넘어 계속해서 재정의되고 있다. 지역 문화예술 정책은 중앙에서 통제하는 것에서 벗어나고 있다. 지역적 특색과 삶의 모습 변화 등 여러 방면의 요소들을 장기적으로 고려해야 하며, 오랜 시간 춘천에서 활동해 온 문화예술인들과 시민들이 중심이 되어야 한다. 현장이 개입할 틈이 없는 관료화는 개선하려고 노력 중이다. 행정의 개입은 기민하게 움직여야 하는 지역 문화예술 정책에 맞지 않는다. 지역의 문화·예술은 행정이 추구하는 ‘효율성’을 강요하기 어렵다.

춘천시 부시장은 “문화재단에서 일하는 직원들은 행정을 ‘대행’해서 우리(시)의 문화사업을 잘 만들어나갈 수 있도록 하는 전문가 집단이라고 생각하면 된다”고 말했다. 이 같은 말은 중간지원조직에 대한 정체성 논의에 불을 지핀다. 춘천문화재단은 춘천시의 행정업무를 대행하는 조직일까? 아니면 시민의 자주성을 높이는 지원기관일까?

‘전문가가 무조건 답’이라 여겨지는 사회도 끝이 났다. 전문가의 경험과 지식, 견해가 중요하지만, 결국 이 사회를 만들고 결정하는 건, 춘천의 문화예술인이며 관련 종사자와 소비하는 시민들이다. 이들을 시민사회라 일컫는다 치면, 중간지원조직은 이러한 시민사회의 실패를 막기 위해 존재한다. 이는 행정을 위한 조직도, 전문가를 위한 조직도 아닌 시민사회를 위한 조직이라는 거다.

툭하면 ‘세금 낭비하는 단체 없애버려라!’ 하면서 시민사회를 돕는 기관을 정치 활동 조직으로 치부하는 경우도 많다. 보조금이나 지원금과 관련된 철저한 감시와 통제는 물론 필요하다. 중간지원조직의 재원과 관련해 많은 한계점이 지적되긴 하지만, 그럼에도 시민사회 역량 강화를 위한 재정지원은 꼭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지금 정부에선 기대하기 어렵겠지만 말이다. 이 모두가 지자체장의 의지에 달려있다.

지금까지 사회를 움직인 행정가들의 관료화된 시스템을 바꾸기는 어렵다. 하지만 조금 더 시야를 확장해 전문가와 시민의 이야기를 들어보길 권한다. 공무원은 행정 전문가답게 행정지원에서 벗어나지 않았으면 한다.

관광과 교육 뭐 다 좋다. 하고 싶은 사업은 시민들과 의회의 동의를 얻어서 하면 된다. 하지만 시민들이 가지는 권리와 중첩된 중간지원조직의 역할을 공무원들 마음대로 주무르지 않았으면 한다.


여담이지만, 문화재단에 새로 온 담당 공무원은 너무나도 자랑스럽게 본인을 마케팅 전문가라고 소개했단다.

특정 문화예술 카르텔 집단과의 이익관계 형성은 또 불보듯 뻔하다. 문화예술을 단순히 시행정의 성과를 돋보이게하는 마케팅의 수단으로만 본다는 건, 정말이지 너무나도 위험한 일이다.

역행하는 문화도시 춘천이다.

행정가들에게 아니, 지자체장에게 고한다.

“제발 시류 좀 읽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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