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국으로 9박 10일의 여정을 떠났다. 가기 전에 그곳에서 무엇을 도와드리면 좋을지 여쭤봤을 때 태국인들이 우리나라 찜닭을 아주 맛있어한다는 이야기를 들었고 그곳에 계신 분들에게 찜닭을 대접했으면 좋겠다는 주문을 받았다. 4명이서 조졸하게 떠난 비전트립이다 보니 예전 60명일 때에는 어렵지 않은 일들이 크게 다가왔다. 그래서 좀 더 계획적으로 우리는 준비하고 움직여야 했다. 가기 전, 육수로 쓰일 것들과 태국에는 없는, 우리나라에만 있어서 꼭 가지고 가야 하는 것들의 목록을 만들고 구비했다.
그러나, 아이들에게 줄 필통과 준비한 선물들의 무게가 어마무시했던 관계로 육수로 쓰일 것들과 그 외 음식 부자재는 떨궈놓고 가야 했다. 그럼에도 오버차지비가 59만 원이 나왔다. 순수하게 우리의 비용으로 가는 거라서 만 원 한 장도 아까운 판에 59만 원은 우리의 심장을 덜컥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우리가 가져가는 이 선물을 행복하게 받아줄 그곳의 아이들을 생각하며 기꺼이 내겠다고 생각하며 모두 흐뭇해했다. 이런 마음이니 이런 여행을 선택한 거겠지 싶다.
그렇게 출발해 도착한 다음날 바로 우리는 장을 보러 갔다. 40명의 찜닭을 준비해 본 적이 없으니 양을 정하는 것이 우선이었다. 더구나 태국인들은 소식하기 때문에 우리 먹는 식으로 계산하면 안 된다고 한다. 그래서 마켓에 가서 1인분의 닭의 양을 재었다. 이 나라는 특이하게도 한 마리씩 파는 것이 아니라 부위별로 덜어서 계산하는 방식이었고 닭봉과 날개를 좋아한다 해서 두 개의 부위로만 40인분을 준비했다. 그러다 매운 김치를 좋아한다는 소스를 받아 우리는 겉절이를 서비스로 제공하기로 했다.
일이 점점 커졌으나 우리 팀에는 막강한 음식요정이 있었기에 걱정 없이 김치까지 만들기로 결정했다. 나는 한 번도 김치를 만들어 본 적은 없었지만 이곳의 배추가 엄청 싱싱하고 달고 맛있어서 김치로 만들어 먹으면 금상첨화일 듯싶었다. 어찌어찌 한인마트까지 가서 액젓과 고춧가루까지 구비하여 만반의 준비를 마쳤다.
음식을 대접하기로 한 첫 번째 장소는 로빠하의 작은 마을 교회였다. 이곳의 분들에게 점심 식사를 대접하기로 하고 마을의 분들을 초청했는데 소수민족분들이 꽤 여러 분 계셨고 각 민족마다의 의상을 입고 있어 아주 이질적인 느낌이었다. 더구나 식당 안에는 제대로 된 냄비도 가스레인지도 없어 당황스러웠다. 그랬더니 마을 주민분이 집에 가셔서 가스통과 가마솥 같은 큰 냄비를 들고 오셨고 그 상황이 참으로 다행스럽기도 하고 어이없기도 해서 웃음이 비시시 새어 나왔다.
여하튼, 우리는 시간 안에 음식을 완성해야 했다. 먼저 식당으로 들어가 음식요정의 진두지휘에 따라 우리 3명은 움직였는데 그중 나는 완전 요알못(요리에 대해 전혀 알지 못하는 사람)이었다. 조용히 산더미처럼 쌓여 있는 감자와 양파를 가져다 껍질을 벗기고 씻어 다듬어 놓았다. 놀라운 것은 내가 다듬는 동안 겉절이는 거의 다 되어갔고 찜닭은 조용히 레인지 위에 앉아있었다. 내 눈에 나 외의 3명은 액션 히어로들이었다.
열악한 환경 속에서 40인분의 음식은 완성되었고 많은 분들이 행복해하시며 음식을 드셨다. 우리나라 음식인데도 아주 맛있게 드시는 연세 많으신 할머니들을 보노라니 연신 웃음이 나오고 그분들께 너무나 감사했다. 1시간도 안되어 음식은 동이 났고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부지런히 정리와 청소를 하셔서 금세 깨끗하게 정리되었다. 준비한 태국 과자까지 가시는 분들께 드리며 활짝 웃음으로 배웅했다. 마음이 너무너무 좋았다.
우리 돈으로 우리가 손수 준비한 음식을 마을 분들에게 대접하면서 연신 허리를 굽혀 감사하다고 하는 일은 참 아이러니하다. 그럼에도 어찌나 그분들께 감사한지 돌아오면서 무척이나 행복했다. 이거다. 이런 마음 때문에 세계일주 여행을 끊고 비전트립이나 봉사여행을 찾아 떠나는 것이다. 그냥 여행은 이런 감사가 없다. 내 돈만큼 좋은 곳을 보고 좋은 것을 먹고 돌아오면 그만이다. 그리고 몇 개의 잔상이 남아 '아, 나 거기 갔었지.'정도로 기억에 남는다.
하지만 이런 여행은 장소나 음식은 기억에 없지만 '그분 있잖아. 음식을 엄청 퍼가시던 분.', '그 노래하시던 몽족 할머니랑 아기를 안고 있던 어린 아기엄마' 등 그 나라 속의 사람은 평생 잊을 수 없는 추억으로 남는다.
특히 두 아이는 잊을 수 없다. 태국은 마약이 허용된 곳이라 곳곳에서 대마초를 파는 곳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는데, 한 여자 아이는 마약쟁이 엄마가 임신 중에도 마약을 해서 낳은 아이라 전체적으로 발달이 늦고 사람들과 어울리기도 힘들어했다. 한 남자아이도 아빠밖에 없는 아이였는데 그 아빠가 마약으로 감옥에 들어가는 바람에 조부모와 살고 있는데 제대로 된 양육이 불가능했다. 안아도 주고 선물도 주었지만 이 아이들을 보며 마음이 찢기는 듯한 아픔을 느꼈다. 마음속으로 아이들을 축복하며 간절히 기도했다. 절대 잊을 수 없는, 잊기 싫은 아이들이다.
우리는 힘도 없고 능력도 없는 사람이지만 그 순간 우리는 정말 간절히 순수하게 그들을 위해 섬기고 마음을 보낸다. 그 마음이 그들에게 하나의 숨이 되기 바라며, 그 숨으로 그들이 삶을 이어나가는 마중물이 되길 간절히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