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문과생이다. 어릴 때부터 문학책을 읽으며 눈시울을 적시는가 하면 역사책을 읽으며 마음에 뜨거운 것이 올라왔다. 이렇게 커가며 공감 능력은 발달하는데 과학적 사고능력은 멈춰버렸다. 그래서일까? 과학은 죽었다 깨도 이미 먼 나라였다. 노력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노력해도 안 되는 과목이었다. 과학 냄새가 나는 영역은 가까이하고 싶지 않았고 사실 이해할 수 없을 거라는 약간의 두려움도 존재했다.
한참 전에 개봉했던 <인터스텔라>라는 영화가 흥행할 때, 호기롭게 혼자 영화를 보러 갔다. 과학적 내용을 바탕으로 영화는 진행됐고 ‘인생 영화’라고 하는 많은 이들을 뒤로하고 나는 지루해 눈을 부릅떠가며 시청했고 한 시간이 흘러 드디어 잠이 들고 말았다. <간디> 이후로 극장에서 잔 건 처음이었다. 그러면서 속으로 “다신 과학 영화도 보지 말아야지” 했다.
작년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라는 책을 소개받고 사두었었다. 그러나 겉표지도 썩 맘에 들지 않았고, 내용도 계속 분류학과 관련된 이야기라서 별 관심이 없었다. 그렇게 이 책과 첫 만남을 가졌다. 새해가 되며 다시 이 책으로 손을 뻗었다. 왠지 이 책을 완독해야 할 것 같은, 그렇게 나의 과학 트라우마를 극복하고 싶은, 다 읽고 나면 다른 책과는 다르게 더욱 뿌듯할 것 같은 등등의 이유로 읽기 시작했다. 역시나, 엄청 지루하고 같은 내용의 반복이라고 느낄 만큼 굴곡 없는 서사가 계속되었다.
읽고 싶을 때 다시 읽고, 다른 책도 먼저 읽고, 방학이라 여행도 다녀오며 시간이 많이 흘렀지만, 완독을 못 하고 있었고 마음의 짐이 되었다. 바쁜 일정이 끝날 무렵, 마음을 단단히 잡고 다시 책을 읽기 시작했다. 그랬더니 이 책의 주요 메시지가 보이기 시작했고 책의 재미도 느껴졌다. 다만 ‘룰루 밀러’라는 작가의 세계관이 나와는 상충되는 부분이 많다 보니 거북스러운 부분도 있고 19세기의 어류 분류학자인 ‘데이비드 스타 조던’에 대해 집착하며 서술하는 이 내용을 내가 굳이 알아야 하는 건지에 대해 고민하며 읽어 내려갔다.
뒷부분으로 갈수록 메시지는 또렷했고 이 책을 읽는 의미를 찾아가기 시작했다.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라는 제목의 메시지 속에는 사실 인간들의 편의와 아집으로 만들어 낸 계층구조에 대한 비판으로 ‘어류’는 존재하지 않음을 알리고 있다. 어류뿐이겠는가! 인간들이 자신의 윗자리를 지키기 위해 만들어 낸 구조는 상상 이상이다. 동물의 세계는 물론이고 인간의 사회에도 계급구조는 반드시 존재하며(청동기 시대부터 만들어진 계급사회는 지금도 여전하다) 민족 간에도 계층구조를 만들어 제국주의나 전체주의의 이념을 만들어 낸다. 더 위의 단계를 선점하기 위해 전쟁도 불사하는 무서운 이념 말이다.
그는 가장 높은 위치에 있는 피조물들조차 조심하지 않으면 그 위치에서 떨어질 수 있으며, 나쁜 습관들이 어떻게든 한 종을 육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쇠퇴하게 만들 수 있다고 우려했다.
p46
인간의 정신이 세상을 조각해 내는 일을 늘 그렇게 잘하라는 건 아니라는 것, 우리가 만물에 붙인 이름들은 잘못된 것들로 드러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노예"는 인간보다 낮은 위치에 있는, 자유를 누릴 가치도 없는 존재였던가? "마녀"는 화형을 당하는 게 마땅한 존재들이었나?
p95
이 세계에는 실재인 것들이 존재한다. 우리가 이름을 붙여주지 않아도 실재적인 것들이. 어떤 분류학자가 어떤 물고기 위로 걸어가다가 그 물고기를 짊어 들고 "물고기"라고 부른다고 해서 그 물고기가 신경이나 쓰겠는가. 이름이 있든 없든 물고기는 여전히 물고기인데...
p95
쉽게 말해서 위험한 사람은 자신을 우월한 존재라고 보는 사람들이라기보다 자신을 우월한 존재로 보고 싶다는 욕망이 강한 사람들이다.
p151
이 책에서는 전혀 다른 단어를 비슷한 의미로 사용한다. ‘사다리’라는 표현을 쓰기도 하고 우생학에서 쓰는 ‘나쁜 피’라고도 하고 ‘부적합’ 또는 ‘정신적으로 무능력한’이나 ‘결함이 있는’ 같은 표현을 쓰는 의미, 다른 표현으로 ‘어류’ 또는 ‘물고기’로 나타내기도 하는 분류, 범주라고 하는 단어의 의미, 책을 읽지 않고는 절대로 이 단어들의 연계된 의미를 찾을 수 없다. 제목에서도 이미 “존재하지 않는다”라는 단어로 표징하고 있는바, 인간이 만든 모든 범주의 허구와 그 허구와 진실의 모호한 혼재로 인한 혼란이 이 모든 단어들의 의미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는 생물학적 유전에 너무 과한 중요성을 부여한 나머지, 인간의 성격을 이루는 거의 모든 특징을 생물학적 유전으로 설명할 수 있다고 생각한 것 같다. 가난, 게으름, 새들을 분류할 수 있는 능력, 이 모든 게 단지 혈통의 문제라는 것이다.
p182
한 종을 강력하게 만들고, 그 종이 미래까지 지속하게 해 주며, 혼돈이 홍수, 가뭄, 해수면 상승, 기온 급변, 경쟁자, 약탈자, 해충의 침략 등 가장 강력한 형태의 타격을 가해올 때도 그 종이 버틸 수 있게 해주는 것으로 다윈은 무엇을 꼽았을까? 바로 변이다.
p187
아버지가 잡초이고 어머니도 잡초인데 딸에게 사프란 뿌리가 되기를 기대하는가?
p190
마지막으로 갈수록 작가는 우리에게 묻는다. ‘물고기가 존재하지 않는다면 당신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올 수 있나요?’라고. 아마도 ‘우리가 어렵게 오랜 시간에 걸쳐 만들어 낸 이 질서가 무너진다면 당신은 괜찮겠냐?’라는 질문으로 들리기도 한다. 적어도 나에게는 이렇게 들렸고, ‘우리가 손에 꼭 쥐고 절대 흔들릴 것 같지 않던 마지막 패러다임마저도 이제는 변화하는구나’하는 희열감마저 느껴졌다.
어류는 존재하지 않는다. “어류”라는 범주는 존재하지 않는다. 데이비드에게 너무나도 소중했던 그 생물의 범주, 그가 역경의 시간이 닥쳐올 때마다 의지했던 범주, 그가 명료히 보기 위해 평생을 바쳤던 그 범주는 결코, 단 한 번도 존재한 적이 없었다.
p242
우리는 전에도 틀렸고, 앞으로도 틀리리라는 것, 진보로 나아가는 진정한 길은 확실성이 아니라 회의로, “수정 가능성이 열려 있는” 회의로 닦인다는 것.
p250
우리가 이 세계에 관해 아직 모르고 있는 것은 또 뭐가 있을까? 우리가 자연 위에 그은 선들 너머에 또 어떤 진실이 기다리고 있을까? 또 어떤 범주들이 무너질 참인가?
p263
고정된 우리의 틀을 산산조각 내 버리는 시원한 문장들이 내 마음에 들어왔다. 작가의 삶과 인생관에 대해서는 전혀 동의할 수 없음에도 인간이 만들어놓은 세상, 즉 신이 만든 트루먼 쇼 속임을 인지하게 만드는 논리는 적극 동감이다.
어렵게 지루하게 때로는 이해할 수 없는 이야기로 끌어왔지만 결국 작가가 하고 싶었던 이야기를 모두 들었다. 고개를 끄덕여가며 들었다. 그러면서 나는 작가와는 다른 질문이 생겼다. 창조론을 공부한 또는 진화론을 믿지 않고 반박하는 그 누군가가 이 책을 읽는다면 어느 부분은 동의하고 어느 부분은 반론할 자료로 쓸지 궁금해진다. 그리고 진화론자이지만 우생학에 대해 반박하는 자와 여전히 우생학적 틀로 선을 만들고 구분하는 사람은 또 이 책을 어찌 볼지 사자 대면이라도 하고 싶어 진다.
‘과알못’ (과학은 죽었다 깨도 이해 못 하는)인 나는 여기까지이다. <상실, 사랑, 그리고 숨어있는 삶의 질서에 관한 이야기>를 충실하게 주제에 맞게 읽었고 왜 상실과 사랑인지, 삶의 질서인지의 개념을 이해했다. 다만 책의 부제에 ‘삶의 질서가 아닌 삶의 혼돈에 대한 것이 아닌가’ 하는 아쉬움이 있다. 처음부터 끝까지 돌고 돌아오니 결국 ‘혼돈’에 대한 이야기인 듯 하니 말이다. 마지막 말들이 잔상으로 남는다.
이 사다리, 그것은 아직도 살아있다.
이 사다리, 그것은 위험한 허구다.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