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편째의 브런치 글을 씁니다

by 영자의 전성시대

몇 년 전, 대학원 동기에게 요즘 브런치라는 앱이 있어서 신규작가들의 등단통로가 되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때는 전혀 관심이 없어서 들은 둥 만둥 했다. 작년 초에 다시 '브런치'에 대해 알게 되며 간간이 쓰던 글을 본격적으로 써보고 싶다는 욕망이 생겼다. 2달 정도 매일 글쓰기의 연습을 한 뒤, 브런치 작가가 될 수 있었다.


처음 브런치 작가로서 나의 소망은 첫째는 부지런히 글을 쓰는 연습을 하고 내 글을 모아놓고 싶었다. 3년째 인스타그램에 나의 책목록을 올리고 간단한 감상문을 올려서 그동안 읽은 책제목을 잊지 않기 위한 장치를 했었다. 그것처럼 쓰고 싶을 때만 글을 쓰는, 삶이 글이 되는 것이 아니라 글이 삶이 되도록 훈련하고 싶었다. 간간히 쓰던 글이 이제 매일의 루틴이 되도록 부지런히 엉덩이로 쓰는 작가가 되길 원했다.


둘째로 그동안 꿈만 꾸고 있었던 나만의 책을 만들고 싶었다. 여러 차례 출판의 기회가 있어서 다양한 프로젝트에 참여했었고 한 두 꼭지를 맡아 글을 썼다. 그러나 엎어지기도 여러 번, 마음에 상실감이 들었고 이러느니 나만의 책을 만들어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실제로 작년에는 나의 시를 담은 책도 출판이 되었고 주민작가로 쓴 글도 출판되어 책이 되었다. 아쉬운 것은 두책 모두 주최하는 기관이 있어서 따라가기만 한 것이라 내 색깔을 온전히 드러낼 수 없었다. 그래서 이제는 내 책을 갖고 싶다는 갈망이 더욱 크다.


셋째로 다른 작가들의 활동을 보며 도전받고 성장하고 싶었다. 브런치를 둘러보며 각양각색의 작가들의 세계를 알아갈 수 있었고, 글로만 아니라 그림이나 웹툰으로 심지어 사진으로 글을 썼고 메시지를 전하는 것을 보면서 나의 세계가 좁은 문이었음을 인정했다. 글이라는 세계가 이토록 강렬하고 다양할 수 있는지, 고전만 읽고 있던 나에게는 새로운 문화충격이었다. 자극을 받은 후 요즘 나오는 트렌드의 책을 읽었고 특히 독립서점에 자신의 이름을 걸고 출판하는 책들을 읽고 분석했다. 자신의 이름을 건다는 건, 자기 색을 분명히 깨닫고 그 색에 맞는 표현을 찾아 글로 나타내는 것이다. 나의 색을 찾는 것이 시급했다.


넷째로 브런치를 통해 나의 삶을 점검하고, 지금 나아갈 바를 찾으며 앞으로 나의 미래에 대해 계획하며 인생을 고찰하는 시간을 갖고 싶었다. 1년 전 처음으로 쓰던 글을 다시 읽으며 그때의 나의 생각을 다시 곱씹어본다. 그리고 지금과 달라진 변화를 느끼고 지금이라면 어떻게 표현할지에 대해 상상해 본다. 또한 앞으로 내가 써야 할 주제들이 무엇이 있는지 떠올려보고 그때그때 필기해 놓는다. 좋은 글을 읽을 때면 5년 뒤, 10년 뒤에 이런 글을 쓸 정도로 성장해 있을 나를 상상하며 조급하지 않으려 노력한다. 글은 서두른다고 나오는 것이 아니라 생각의 여백이나 삶의 공간, 시간의 여분이 있어야 쓸 수 있더라.


이런저런 생각들로 10개월이 다 되어가는 요즘, 드디어 100번째의 글을 쓴다.


그러면서 드는 생각, 이곳에서 글을 쓰며 행복하기도 했지만 한계도 많이 느꼈다.


첫째 훌륭한 글을 쓰는 작가들을 보면서 기가 죽었고, 구독자가 많은 작가들을 보면서 자신을 잃어갔다. 자꾸자꾸 통계표를 확인하며 '나의 글이 인기가 없구나! 왜 인기가 없을까?'를 고민하는 나를 발견했다. 인기를 받으려고 글을 쓴 게 아닌데 어떤 분이 '쓰다 보니 라이킷이 1000개가 넘었어요'라는 글을 읽으며 속이 쓰린 건 분명했다. 더구나 그분의 글이 훌륭하다고 느끼지 않았고, '그럼 내 글은 그 글보다 더 별론가보다'라는 결론을 내리며 씁쓸함을 감출 수 없었다.


둘째 정말 잘 쓰는 글은 '남이 이해할 수 있지만 남은 쓸 수 없는 글'이라고 했다. 이 말이 비수가 되어 내 가슴에 꽂혔고 지금까지도 간간히 내 속을 긁어대고 있다. 생채기 난 마음으로 내 글을 다시 읽으면 누구나 쓸 수 있는 하찮은 글이라고 느꼈고 그럼 다시 의기소침해지는 내 마음이 된다. '어찌 첫 술에 배부르랴!'라는 심정으로 욕심을 내지 않고 자연스럽게 물 흐르듯이, 여유 자적하게 글을 쓰겠다는 초심을 잃고 초조하게 다리를 달달 떨고 있는 내가 되어간다.


셋째 삶에 치이고 일에 치이고 건강에 치여 시간을 쪼개어 글을 쓰니 글감을 자꾸 잃어간다. 신경 써야 하는 일은 반복적으로, 주기적으로 늘 생긴다. 그런 일들에 유연하게 대처할 만 하지만 한꺼번에 닥치면 두 손 두 발을 다 들어버리게 된다. 버틸수록 내적 에너지가 더 닳아버리기 때문이다. 학교일은 쉴 새 없이 돌아가고 실수를 용납하지 않는 성품으로 어느새 글을 쓰는 건 뒷전으로 밀린다. 퇴근 후에 쓸라치면 때론 지쳐 뻗거나, 선약이 있거나, 밀린 집안일을 하거나 시간은 암전으로 치닫는다. 저녁마다 운동을 할 것인가? 책을 읽을 것인가? 글을 쓸 것인가?를 고민하는 어이없는 인생이다.


100편의 글을 쓰며 그동안 느꼈던 감정들을 정리해 보니 속이 후련하기도 하고 기특하기도 하고 부끄럽기도 한 지킬 앤 하이드 같은 마음이다.


이 마음을 다독이자면, 나의 글을 읽으며 눈시울을 붉히는 그녀를 기억한다. 일하면서도 틈틈이 내 글을 읽는 재미로 산다는 그이를 본다. 내 글로 위로를 받았다는 그분의 연락도 받았다. 무엇보다도 책 한 권도 읽지 않는 아이가 매번 내 글을 읽으며 피드백을 해주고, 에세이의 ㅇ도 모르면서 일하다가도 열심히 하트를 눌러주는 그이, 돋보기를 끼고 늦은 밤이나 새벽에 일어나 글을 읽고 꼭 하트를 누르며 댓글도 달아주는 그분까지, 나에게 절대 최고의 글을 쓰라고 하지 않으면서도 묵묵히 나의 글을 응원하는 찐 독자들이 있다.


모두가 나를 좋아해 줄 수 없는 것처럼 모두가 내 글을 좋아할 수 없다.

인생에 온전한 내편이 하나라도 있으면 그 인생은 잘 살았다고 평가하듯이, 내 글을 읽어주는 독자 한분이 있다면, 글을 읽으며 공감하며 힘을 얻어 하트를 꾸욱 눌러주는 한 명이 있다면 용기를 내자. 주눅 들지 말고 오른발 왼발 다시 조심스레 발을 떼어 보자. 흙밭을 걸어보고 돌짝밭도 밟아보고 아스팔트도 뛰어보며 그 느낌을 생생하게 글로 표현하자. 누가 아랴! 내가 느지막이 좋은 작가로 설 수 있을지.


일단!! 좋은 교사가 되고! 좋은 사람이 되고! 좋은 이웃이 되자! 그러다 보면 좋은 글도 나오겠지. 다른 누구보다도 내가 나 자신을 응원한다. 영자가 영자의 전성시대를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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