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조대왕님 죄송합니다.
대체 공휴일에 친한 선생님과 수원으로 여행을 갔다. 평소 수원화성이 너무 보고 싶었는데 ‘수원’이라는 도시가 마음으로 그렇게나 멀었다. 차라리 ‘부산’이 더 가까운 느낌적 느낌이랄까! 수원에 두어 번 갔을 때마다 길이 막혀 3~4시간이 걸린 경험 때문 일 것이다. 그런데 기차로 가면 30분 만에 갈 수 있다는 반가운 소식에 바로 수원으로 결정, 떠나게 된 것이다.
비가 많이 온다는 슬픈 소식도 여행을 간다는 설렘을 이기지는 못했다. 기차를 타면서 이것저것 군것질거리를 잔뜩 사서 탔지만 다 먹기도 전에 도착해 버렸다. 역시나, 비는 작정하고 내리는 듯했다. 바지도 젖고 신발도 젖었다. 첫날은 아쉽지만 일찍 숙소를 들어와 ‘내일은 비가 오지 않기’를 바랐다.
새벽녘 창문으로 빗소리가 그치고 새소리가 들려 얼마나 반가운지! 우리는 벌떡 일어나 서둘러 식사한 뒤 드디어 고대하던 <화성>을 보러 출발했다. 하지만 너무나 헷갈린 게 왼쪽으로 가면 <화성행궁>이 있다는데 오른쪽으로 <화성 성벽>이 보였다. 어쨌든 왼쪽으로 가래서 열심히 걸어가 보니 <화성행궁>의 정문이 떡하니 나타났다. 표지판을 읽어보니 정조가 수원에 올 때마다 머물렀던 임시거처를 이곳 ‘행궁’이었다.
표를 파는 분에게 “여기 화성은 어디 있나요?”하고 물으니 지도를 보여주시며 “여기가 화성인데 다 보시려면 2시간 걸립니다.”하시는 거다. “이왕 왔으니 ‘화성’ 정도는 다 보고 가야지”하며 우리는 의지를 불태우며 2시간을 걷기로 했다. 다시 오른쪽으로 성큼성큼 걷는데 20분가량 걸어도 도대체 화성은 어디 있는지 알 수가 없었다. 우리 둘은 난감해하다가 결국 현지에 사시는 분에게 물어보기로 했다.
마침 뒤쪽에서 운동하시며 걸어오시는 아주머니에게 “안녕하세요? 혹시 여기 화성은 어디 있나요?”하니 아주머니는 어리둥절해하시며 “여기가 화성인데요?”하셨다. 나는 다시 목소리에 힘을 주어 “네 아는데요 여기는 성벽밖에 없어서요. 화성이 어디 있나요?”하고 재차 물으니 아주머니는 그제야 이해하신 듯 “여기가 화성이에요. 화성은 궁은 없고 쭉 이런 성벽으로 둘러싸여 있어요. 이게 그 화성인 거죠. 행궁이 궁이니까 거기만 사람이 거처하는 곳이고요.”라고 하셨다.
그 순간, 우리가 정말 멍청이 같았다. 멋쩍은 웃음을 지으며 이어지는 아주머니의 친절한 설명을 들으며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금 수원화성의 웅장함을 돌아보았다. 아주머니가 가시고 난 뒤, 우리는 서로를 바라보며 박장대소했다. 정말이지 "Dumb and Dumber"가 따로 없었다. 우리의 질문이 얼마나 어이가 없었을까? 화성을 눈앞에 두고 계속 화성을 찾는 꼴이라니! 게다가 아주머니에게 자신 있게 질문하던 꼴이라니!
평소에 정조를 어찌나 좋아하는지 정조의 업적을 읊으라 하면 한 시간도 말할 수 있고, <리더라면 정조처럼>도 작년에 얼마나 열심히 읽었던가! 정조의 어진을 보며 “어쩜 얼굴도 내 스타일이야.”를 외치던 내가 아닌가! 심지어 드라마도 잘 안 보는 내가 정조의 드라마라고 해서 <옷소매 붉은 끝동>도 몰아보기 했었는데. 이 화성을 짓느라 무던 애를 쓰시던 무덤 계신 정조에게 죄송했다. 이리 화성을 몰랐다니.
에고,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했던가! 앎에는 끝이 없나 보다.
화성아, 잠깐 기다려. 공부해서 다시 올거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