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꾸 떠나야 하는 이유

by 영자의 전성시대

20년 전, 부모님이 평창에 집을 산 뒤로 우리는 일 년에 두어 번 그곳으로 내려가 일주일씩 머물다 왔다. 그곳은 산 중턱에 있는 거의 쓰러져가는 집과 밭데기가 있었는데 산 중턱이다 보니 다른 집이나 외부인은 하루 종일 있어도 보이지 않았고, 보이는 것은 산과 나무고 위를 올려다보면 하늘과 구름만 보였다. 정말이지 하루 종일 아무것도 할 게 없는 곳으로 5시 정도만 되면 깜깜해서 뭘 할 수도 없는 곳이었다.


그런데 그곳에 가서 하루 이틀 정도가 지나면 무거웠던 머릿속이, 답답했던 가슴이 진정되는 경험을 했다. 터질 것 같은 분노와 미움을 담아 그곳으로 가면 산이, 나무가, 하늘이 나의 힘든 감정들을 고스란히 받아내 주었다. 그 공간에서의 위로가 나를 다시금 일어서게 했고 잠시나마 숨을 고르게 했다. 그 위로가 늘 마음에 남아있다.


이런 경험을 통해 좋은 공간으로 떠나는 것만으로도 쉼이 될 수 있음을 알았다. 그래서 틈틈이 이런 경험을 하기 위해 노력한다.


하나는 독서로서 간접적이지만 현실을 떠나 다른 차원의 공간으로 이동하는 것이다.


어느 여름날, 퇴근하며 무거운 머리로 집 앞에 있는 작은 카페로 향했다. 그때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설국>을 읽었는데 한여름이라 야외카페는 더울 법도 했는데, 읽다 보니 온몸이 서늘해지며 내가 그 안의 여자 주인공이 되어 절절한 삶을 살고 있었다. 책을 덮으며 아까까지 뭘 고민했었는지 기억도 나지 않았다. 얼마나 집중했는지 한 여름밤의 설국을 맛보는 희한한 경험만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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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하나는 진짜로 여행을 떠나는 것이다.


나는 사람들이 감탄할 만큼 틈틈이 여행을 간다. 자유 휴업일이 있는 날이면 어떡해서든 가까운 곳이라도 가고, 방학이 되면 2주 정도로 가보지 않은 곳이나 지인들이 살고 있는 외국으로 떠난다. 하루하루의 기행문을 쓰며 나를 힘들게 했던 문제들을 멀리 떼어놓고 객관화하며 소멸시킨다. 그리고 그 순간의 나를 즐긴다. 내 영혼의 따뜻했던 날들을 많이 선물하고 돌아오면 넉넉해진 품으로 나의 학생들을 따뜻하게 품어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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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의 그 평창의 쓰러져가던 집에서 느꼈던 해방감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고 나는 그래서 오늘 다시 가방을 꺼내 짐을 싼다. 그 설렘을 안고 떠나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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