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토 <귀무덤>을 다녀와서
역사를 가르칠 때, <임진왜란>의 부분에서는 창피함과 분노를 동시에 느낀다. 우리 조상의 무능함을 보는 듯하여 창피하고, 침략한 것도 모자라 너무나 무식한 방법으로 우리 백성을 죽이고 문화유산을 파괴하는 일본을 향해서는 분노를 금치 못한다.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일본의 전국시대를 통일하고 다이묘(영주)들의 반란을 염려해 그들이 다른 곳으로 눈을 돌리게 할 필요가 있었다. 그것이 대륙정벌이었는데 우리나라에 명으로 가는 길을 열라고 시비를 걸고 우리가 거절하자마자 전쟁은 시작한다. 그것이 바로 <임진왜란>이다. 이 당시 우리나라는 오랜 시간 전쟁이 없었기에 군사력이 바닥이었다. 그래서 20일 만에 수도를 함락당하는 굴욕을 당했다.
이때 일본은 너무나 무식한 방법으로 우리 민족을 죽였다. 사람을 얼마나 죽였는지 수를 세기 위해 머리를 잘라 오라 하니 머리가 무거워서 배가 휘청하고 운반하기가 힘들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가벼운 귀와 코를 베어 오라 했고 썩지 않게 소금에 절이기도 했다. 그렇게 귀와 코가 쌓아진 곳에 <귀무덤>이 생겼다.
몇 해 전, 다큐멘터리에서 귀무덤을 본 후 이곳에 가보고 싶었고, 교토 이틀째 날에 아침을 먹자마자 이곳으로 향했다. 택시를 타고 가는데 갑자기 차가 가기 힘들 만큼 좁은 골목으로 들어갔고 옛 일본의 가옥들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었다.
골목을 나오자마자 너무 생뚱맞은 곳에 귀무덤이 있었다. ‘하긴, 일본이 귀무덤이 무에 자랑스럽다고 크게 전시했겠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실제로 바로 옆에는 귀무덤과 비교도 안될 만큼 커다랗고 화려한 신사가 있었다. 신사는 거들떠도 안 보고 귀무덤 앞으로 가니 계단 위에 무언가가 있었다.
‘이게 뭐지?’ 하며 가까이 가니 누군가가 가져다 놓은 참이슬 한 병과 북어 한 마리가 고적히 놓여 있었다. 그 순간, 숨이 턱 막혔다. 안타까운 마음으로 보러 오긴 했지만 옛 역사의 뒤안길을 스쳐 가듯 가볍게 보러 온 것이었다.
그러나 참이슬과 북어 한 마리의 조촐한 제사상을 보며 마음이 숙연해졌고 이분들을 위해 잠시 묵념하며 촉촉해진 눈가로 다시 바라보았다. 저쪽 구석 자리에 묵혀놓은 애국심이 들썩거렸고 1592년 임진년의 그 참혹함을 잠시나마 느끼는 시간을 가졌다.
그리고는 옆에 있는 신사를 눈 찢어지게 째려보며 소심한 복수를 했다. 침략해서 다른 민족을 죽인 역사를 가진 민족보다는 그래도 우리가 낫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