싫은 건 싫고, 배울 건 배우고

일본 '트램'을 타고

by 영자의 전성시대

일본 여행의 마지막 날, 한 선생님이 ‘아라시야마’에는 꼭 가봐야 한다고 했다. 이곳에 ‘게이샤의 추억’ 영화를 찍은 장소가 있다고 해서 잔뜩 설렘을 안고 출발했다. 택시를 타고, 버스를 타고, ‘트램’이라는 경전철 같은 기차도 꼭 타야 한다고 해서 한참을 찾아갔다. 입구로 들어가니 바로 선로가 있어 놀랐고 너무나 이국적이라 새로웠다. 기차는 한 칸이었고 들어왔다가 다시 그 길로 나가는 요상한 기차였다.


관광객들과 현지인들이 함께 이동하는 교통수단으로 이용하는 사람들로 붐볐다. 피곤했던 지라 자리에 앉아 슬슬 졸음이 오던 차에 우락부락한 남자 한 명이 들어왔는데 덩치가 커 무섭고 머리까지 단발이라 풍기는 아우라가 장난 아니었다. 괜스레 문 옆에 서 있는 그 남자를 의식하며 예의 주시하는 중에 다음 정류장에서 보행 보조기를 끌며 할머니 한 분이 들어오고 있었다.


할머니는 굽은 허리로 보조기를 먼저 넣고 들어오려 했으나 잘 들어가지 않았다. “어?”하는 순간, 그 우락부락한 남자가 보조기를 들어 안으로 밀어 넣었고 자기 팔을 뻗어 할머니를 잡아드렸다. ‘어머나!’ 하는 마음으로 이 남자를 보는데 아까처럼 무서워 보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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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가 기차 안으로 들어서니 끝에 앉은 남학생 한 명이 발딱 일어서서 자리를 양보했다. 감탄의 연속이었다. 할머니는 아마도 바로 내린다고 하는 것 같았고 학생은 다시 자리에 앉았다.


‘이 얼마나 아름다운 장면인가!’



어릴 적에는 학교 수업 시간에 예절을 배웠다. 그래서 기차든 버스든 어르신이 계시면 당연히 일어나야 하는 줄 배우고 자랐다. 학교에서 배우지 않았더라도 엄마가 늘 양보해 드리는 모습을 보고 자랐기에 나도 당연히 몸에 배어있었다.


하지만 지금 현실은 좀 달라졌다. 어르신들이 앉아야 하는 공간이 따로 있고 우리가 앉아야 하는 공간이 분리되었다. 심지어 임산부에게조차 자리를 양보하지 않으니 그 자리마저 따로 지정해 놓는 삭막한 세상이 되어버렸다. 하지만 익숙해져 버린 탓에 그런 현상이 당연한 줄 알았는데 오늘의 이 장면을 보니 마음 저 구석의 무언가가 울룩불룩하다.


일본이란 나라의 이중성이 참 싫지만 그들의 이런 좋은 문화의 지속력이 부럽기도 하다. 그러면서 ‘다음에 지하철 타면 핸드폰 내려놓고 어르신 계시면 자리 양보하는 용기를 내야겠다.’ 하는 마음이 들었다.


싫은 건 싫은 거고, 배울 건 배워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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