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아, 미안하다

딸을 믿지 못하는 어느 엄마의 이야기

by 영자의 전성시대

어릴 적, 우리 엄마는 완전 깔끔쟁이 었다. 거의 완벽에 가까울 만큼 집은 늘 깨끗했고, 내가 어질러놓고 학교에 다녀오면 방은 다시 먼지 하나 없는 방으로 변신해 있었다.


그 엄마에 그 딸이라고, 결혼과 동시에 나에게도 ‘정리병’이 있다는 걸 깨달았다. 늘 깨끗한 걸 보고 자라다 보니 정리하는 게 습관이 되었고, 시간 내어 정리하는 것도 일이라서 항상 제자리에 두는 게 몸에 배었다.


하지만 우리 가족은 그렇지 않았다. 특히나 우리 둘째 아이는 물건을 제자리에 놓는 게 희귀한 일이었고, 방을 정리하는 것은 일 년 중 행사였다. 가끔 아이는 내 방에도 침입해 내 물건을 가져가기도 했다. 내 물건을 쓰는 건 괜찮지만 그 물건을 제자리에 두지 않는 행동에는 불같이 화를 냈다. 몇 번의 이런 일들이 발생하고 아이는 내 물건은 제자리에 두려고 노력했다.

오늘 아침, 화장을 하다 보니 내 화장 쿠션이 제자리에 없었다. 바쁜 아침에 짜증이 밀려왔다. 여러 번을 찾은 뒤, “내 쿠션 만진 사람 누구야?”하고 외쳤다. 남편이 화장실에서 나오며 “난 아닙니다.”한다. 로션도 안 바르는 남편은 당연히 아니다. 그 외 단 한 명, 이 소행은 우리 작은 아이다.(외국에 있는 큰아이가 밤새 들어왔다 간다면 모를까!)


자고 있는 아이에게 가서 “내 쿠션 어디다 뒀어?”하며 소리를 질렀다. 아이는 자다 깨서 볼멘소리로 “나 아니야.” 한다. ‘그렇지, 또 아니라고 하지.’ 난 당연히 그 말을 믿지 않았다. 이 쿠션이 발이 달린 것도 아니고 나 아니면 아이밖에 없기 때문이다.


자기가 아니라는 아이를 두고 다른 것으로 마무리했다. 하지만 그 쿠션을 찾지 못해 짜증의 잔해가 남아 있었고 나중에 아이가 제정신일 때 자백을 받아내리라 생각했다.

그러면서 솜을 꺼내느라 밑의 서랍을 열었는데 그 안에 그토록 찾던 쿠션이 다소곳이 앉아있었다. 그 순간, 잊었던 기억이 떠올랐다. 동선을 고려해 매일 쓰는 칸에 쿠션을 옮겨놓았었다. 그걸 내가 잊은 것이다.


조용히 준비하고 마치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출근했다. 그러면서 속으로 계속 웃음이 났다. 우리 딸은 얼마나 억울했을까? 범인은 나였는데,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을 것이다.

딸아, 미안하다.


KakaoTalk_20230619_122142274.jpg


keyword
작가의 이전글최고의 술, 참이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