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착한 다음 날부터 우리 모두는 흐트러지는 정신을 똑바로 붙들어야 했다. 그곳의 기온은 열대야인 우리나라와 비슷했으나 높은 습도 탓에 온몸이 끈적이고 땀이 줄줄 흘러 정신이 흐릿했다. 그러나 바로 700여 명의 아이들이 간절히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기에 자기의 자리에 맞게 똑바로 준비를 해야 했다.
10여 년 가까이 갔었지만 6년의 텀이 있어 도시의 모습이 달라져있었고 상가들도 바뀌어있었다. 전에는 "홍"이라는 프랜차이즈가 독점이었고 "얄랄라"라는 몰이 최신이었는데 이젠 "SM"이라는 몰이 2017년에 생겨 반짝반짝했고 거의 독점이었다.
그 몰 앞에 있는 큰 체육관을 대관하여 페스티벌을 여는데 이곳에서 우리를 포함한 150명의 스텝과 700여 명의 아이들과 그 아이들을 데리고 오는 부모님들로 북적거렸다. 몇 달 전 보낸 옷들과 문구류 등은 이미 세팅되어 있었고 우리는 한국에서 가져온 재료들을 풀어 준비했다.
예배 후에 달란트 페스티벌 시작!
1년간 아이들이 차곡차곡 모은 달란트로 오늘 갖고 싶은 것들을 다 살 수 있다. 평소에는 못 보고 못 사던 것들을 다 살 수 있기에 아이들은 기다리고 또 기다렸다. 이 아이들의 눈빛을 보자니 내가 여기 이 고생을 하며 왜 왔는지 알 수 있었다.
전에는 아이들이 질서감이 하나도 없어 위험하기도 했는데, 이제는 이 아이들이 줄을 서는 진기한 광경을 볼 수 있었다. 물건을 사는 아이들에게 엄마들은 위층에서 필요한 것들을 손짓 발짓을 하며 가리켰고 역시나 가장 인기 있는 곳은 먹거리 부스였다.
우리 팀의 책임을 맡고 있는 나는 아이들 속으로 들어가기보다는 전체적인 부스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필요한 것이나 다른 부스의 상황들을 살펴야 했다. 처음에 너무 많은 아이들로 놀랐다가 금세 적응하고 최선을 다하는 팀원들이 눈에 띄었고, 버금갈 만큼 아이들을 위해 섬기는 이곳의 스텝들도 단연 돋보였다.
아이들의 손이 무거워질수록 우리의 마음은 가벼워지고 기쁨으로 부풀었다. 내 뒤에서 달란트 없이 구경하던 아기엄마가 철장 안으로 손을 뻗어 내 어깨를 두드렸다. 내 손에 들려있던 부채를 주었고 이게 머라고 활짝 웃음으로 좋아라 했다.(사실 머라도 더 주고 싶었지만 다른 사람들이 몰려올 까봐 더 줄순 없었다)
몇 시간의 축제는 끝이 나고 바리바리 싸갔던 물품들은 바닥이 났다. 이리 많은 아이들을 한꺼번에 처음 본 몇 분은 얼이 빠져 계셨고 차라리 직장을 가서 일하는 게 훨씬 더 낫겠다며 웃으셨다.
맞다. 이런 힘든 일을 우리는 계속해 왔다.
왜냐고?
아기를 낳느라 죽을 고생한 엄마가 아기 웃는 얼굴 하나에 그 고통을 다 잊듯이, 이곳 아이들의 행복한 얼굴에 그 힘듦은 다 잊고 다시 오게 되는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