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피 도넛 하나의 배려

필리핀 레가스피 마지막 이야기

by 영자의 전성시대

우리 팀은 총 3팀으로 나뉜다. 하나는 의료팀으로 우리 팀의 의사 한 명과 현지인 의사 2명으로 구성되어 간호사와 약사까지 이 팀에 소속되어 있다. 둘째는 구제팀으로 태풍으로 무너진 집을 수리해 주거나 쌀을 몇 백포씩 나누어 주는 일을 한다.


셋째는 어린이팀, 가장 많은 팀원이 소속된 팀으로 페스티벌과 학교에서 수업이나 체험행사를 하고 마을 아이들을 모아 축제를 열어주기도 한다. 이번에는 "까방안"이라는 초등학교의 4학년 학생들을 대상으로 체험수업을 진행하기로 했다.


예전보다 영어를 알아듣는 아이들이 많긴 했으나 초등학생들이라 따갈로그로 대화해야 용이했고 그래서 한 파트당 2명 정도의 스텝들이 함께했다. 그러다 보니 현지스텝이 우리 팀과 거의 같은 인원으로 참여하게 되었다. 우리 팀의 지글지글 끓은 열정과 스텝들의 노력과 정성으로 우리는 아이들의 위한 막강한 팀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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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팀 리더로 체험수업의 교안을 짜고 재료를 준비하고 점검하며 상황을 리드하는 일을 했다. 일단 수업이 시작되면 상황을 살필 뿐, 나의 할 일은 거의 없다. 그래서 시작되면 우리 팀들을 위해 물이나 음료를 사 오는데 우리나라에서 3~40분이면 끝날 일을 필리핀은 거의 2시간이 걸린다.


전날 까방안 학교의 300명의 학생들을 위해 600개의 과자를 사는데 박스로 살 수 없다고 해서 600개의 과자를 전부 세서 계산대로 가져왔다. 그리고 그 과자를 종류별로 다시 세서 올리면 마트케셔가 다시 센다. 그 센 걸 포장하는 사람이 종이에 종류대로 포장해 준다. 우리나라에서는 10분이면 끝날일이었건만 1시간 반에 걸쳐 과자 600개를 살 수 있었다.


이날도 부실하게 아침을 먹고 땀 흘리며 일하는 팀원들을 위해 음료와 간식을 준비하러 몰로 갔다. 음료를 사고 시간을 좀 더 줄이고자 계산하는 중에 나는 보아두었던 "크리스피 도넛"코너로 뛰어갔다. 이미 줄이 길게 늘어 있어 재빨리 줄로 들어갔다.


여기서부터가 문제다! 일하는 점원들이 자기들끼리 떠들고 놀면서 주문을 받고 있었다. 손도 겁나 느린데 놀면서 하니 얼마나 더 느리랴!


내 얼굴은 붉으락 푸르락하며 열이 올라오고 있었다. 하지만 그곳에서 줄을 서서 열을 내는 사람은 나만 유일했다. 다른 사람들은 그러려니 하고 딴짓을 하며 여유 있어 보였고 난 이해되지 않았다.(지금도 이해하기 힘들다ㅜ) 어찌어찌 1시간가량의 시간으로 주문하고 포장을 끝냈다. 포장도 어찌나 느린지, 내가 기절하지 않은 게 다행일 정도다.


우리 팀과 스텝들까지 해서 60개 정도의 오리지널 크리스피 도넛과 음료를 들고 학교로 돌아와 간식타임을 가졌다. 모두들 당충전을 하고 높아진 텐션으로 다음 수업을 이어갔다. 특히나 현지스텝들이 신나서 노래하며 춤추며 분위기를 완전히 띄어 한 편의 뮤지컬을 보는 것 같았다.


얼마 뒤, 따로 이야기를 들으니 이곳 스텝들이 크리스피 도넛이 간식이란 걸 알고 완전 감동했단다. "크리스피 도넛"은 평소에 먹기 어려운 음식이고 월급을 받거나 특별한 날에 먹는 비싼 음식이었다. 그걸 여기서 먹으니 좋았고 특히나 우리와 같은 것으로 자기들의 간식도 챙겨주어 감동했다는 것이다.


에고, 이 도넛이 머라고...


다시 생각해 보니 비싼 도넛이 아니라, 우리와 자신들을 돕는 자와 도움을 받는 자의 위치에서 보지 않고, 함께 음식을 나누며 교제하는 관계가 이들에게 감동이 된 것일 거다.


다행이다. 그리 투덜대며 도넛을 샀어도 이 작은 음식이 선한 영향력을 끼쳤으니 감사하다.

다음에 또 사줘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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